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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협상

해미

어릴 때 나는 협상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가령 가족이 학습지를 어디까지 풀어놓으라고 하면, 그날은 너무 하기 싫다거나, 놀고 싶다거나, 내일까지 하겠다고도 해볼 수 있는데 그냥 가족이 꽁꽁 숨겨놓은 답안지를 찾거나 서점 가서 답안지를 베꼈던 것 같다. 변명 좀 해보자면 딱히 가족이 수긍할 거라 기대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못 믿어서 미안~)

 

미류

협상하다. 이 말의 어감은 타협하다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께름칙한 말이었다. 굳이 따지면 협상이든 타협이든 부정적일 이유가 없지만 현실에서는 늘 양보를 요구받는 쪽이 정해져있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또 협상이나 타협을 계산적이거나 원칙을 저버렸다는 뉘앙스로 곧잘 사용하는 화법도 마뜩치 않다. 뭐래. 내 안에서 협상이 필요한 문제겠다.

 

대용

어릴 때부터 쉽게 협상에 응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유치원을 다닐 때 였던가, 음료수 하나를 권하며 지금 하나 먹고, 다음에 두 개로 가져오라는 농담을 건네는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했고 음료수는 단 한 방울도 먹지 않았다. 갚을 능력이 없으니 저 음료수는 독약과 다름 없다고 여겼던 것일까. 그땐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이런 성격이 스스로도 피곤하다. 근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민선

협상, 상대가 수긍할 만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감정에 호소해온 것 같다. 먹힐 때도 많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가 더이상 안넘어가서인가 먹히지 않을 때가 이젠 더 많다. 최근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핵심카드로 '마스가' 모자(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를 꼽는 걸 보며 찜찜했는데, 여튼 협상에서 감정을 움직이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는 생각.

 

'경영자'가 협상을 잘 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정말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직간접적으로 체득한 온갖 종류의 협상의 기술을 발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수다를 듣다 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인권 또한 '원칙'이기보다는 평범한 삶을 위한 협상의 언어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