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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윤석열을 파면시킨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마 다들 쉽게 짐작하실 거예요. 윤석열이 파면된 이후에 인권활동가들이 잠깐의 쉴 짬이라도 낼 수 있었냐? 하면 ‘그럴 리가…’ 읊조리게 되는 현실을요.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는 뉴스는 하루 종일 귓가를 때리지, 조기 대선 일정이 확정되면서 퇴진 투쟁을 함께 잘 평가할 새도 없이 대선 대응도 고민해야지, 그동안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한 각 단체의 활동도 다시 논의하고 계획도 다시 만들어야지… 저도 파면 후 한동안 동료들을 만나면 ‘좀 쉬었어요?’ 묻는 것이 일상적인 인사말이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 지난 4월 23일 저녁, 인권재단 사람 지은 ‘스테이션 사람’에 세상 바쁜 인권활동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더하기)가 연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피티 “파면 승리! 레츠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지난 네 달 동안 거리에서 눈비 맞으며 함께 싸웠는데,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아무리 태산과 심해 같이 크고 깊어도 윤석열을 파면까지 시켰는데, 서로 어깨 두드리며 소회 나눌 시간도 못 갖는 게 말이 되니…? 아마 이런 심정으로 더하기 담당 활동가들이 마련한 자리가 아닐까 싶었답니다. (^^)

 

  

눈물 나게 맛있었던 비건 식사 + 각자 꼽은 '퇴진 투쟁 광장의 한 장면‘

 

아무리 그래도 파면 승리 파티인데 그냥 모여서 소감 나누자고 하면 (다들 까칠한 활동가라) 떨떠름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시작부터 훈훈한 분위기가 펼쳐질 수 있었던 건 정말로 너무 정갈하고 맛있는 비건 식사 덕분! 파티 장소도 내어주고 파티 기금도 지원해준 인권재단 사람 덕분에, 또 다른 인권활동가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도록 곳곳에 마음을 쓴 기획단 활동가들 덕분에 호사(好事)를 누리고 대접받는 기분이 물씬. (ㅠ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오소리’ 활동가와 HIV/AIDS인권행동 알 ‘소리’ 활동가, 두 소리 활동가의 사회로 시작된 본격 프로그램은 어느 순간에 고성과 팔뚝질이 난무하는 현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각자 인사도 나누고(반가움 한 스푼), 12.3 비상계엄부터 4.4 윤석열 파면까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장면들을 영상으로 함께 보고(서로에 대한 애잔함 두 스푼), 소주 활동가의 촉촉한 노래 공연을 함께 듣을 때까지만 해도 분명 훈훈했는데요(고마움 세 스푼). 갑자기 퀴즈가 시작되더니 사회자들이 성명서 제목만 보고 어느 단체에서 낸 성명인지를 맞추라는 거 아니겠어요. 이것도 아마 다들 쉽게 짐작하실 거예요. 이 당시에 나온 성명 제목이 뭐 특별한 게 있겠어요? 다 거기서 거기 아냐? 생각했는데, 아래 사진에 열띤 현장을 보세요. 다들 서로 말하겠다며 벌떡 일어서고, 귀신같이 알아맞히고, 한 발 놓쳤다면서 굉장히 아쉬워 하더라구요. 지독한 인권활동가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디에 가 닿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은 성명도 동료 활동가들만큼은 챙겨봐주고 알아봐주고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고성과 팔뚝질이 난무하는 현장은 행성인 몸짓패의 열정적인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사진을 보고 언제 어떤 장면인지를 맞춰야 하는 사진 퀴즈까지 계속되었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인권활동가들이 각자 꼽은 '퇴진 투쟁 광장의 한 장면‘이었는데요. 속상한 장면도, 웃픈 장면도 있었지만, 역시 각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옆에 붙어 있는 동료들과 함께 한 순간이더라고요. 작년 인권재단 사람 20주년 인터뷰를 하면서 ‘인권활동가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깜깜한 바다 속 등대’라고 말했던 게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웬수처럼 느껴질 때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 인권의 문제는 ’다수의 압도적인 지지‘와는 항상 거리가 멀잖아요. 그렇지만 외롭게 느껴지는 광장 안에서도 우리의 문제를 함께 외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잘 모르는 누군가와도 어깨를 맞댈 수 있다는 걸 다시 또 배우게 될 때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길고 추웠던 네 달의 시간도 힘내서 지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물받고 좋아하는 퀴즈왕 인권활동가들 + 한국옵티칼 동료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윤석열 퇴진 투쟁부터 윤석열 파면 파티까지, 여전히 한 줌이라 해도 인권운동을 소중하게 가꾸어 가는 사람들과 함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 했네요. 앞으로도 한동안 맘 편할 날은 쉽게 오지 않겠지만, 서로 어깨 기대며 걸어가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