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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지금부터 우리, 체제전환!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를 돌아보며

 

3월 23일,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가 열렸다. 작년 11월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가 결성되고, 체제전환운동포럼을 거치며 드디어 ‘정치대회’를 열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봄다운 따뜻한 날씨는 상쾌한 하루를 예감케 했다. 정치대회가 열리는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근처는 난생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이조차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사회운동의 정치’라는 낯섦, 그리고 설렘과 연결되는 것 같았다. 정치대회 장소 처음 들어섰을 때, 곳곳을 장식한 플래카드와 하얀 벽과 바닥이 주는 환한 느낌도 너무 좋았다.

체제전환운동을 고민하고 함께 도모하려고 전국에서 모인 사회운동 활동가 300여 명이 함께 토론하는 ‘정치대회’ 장소에는 커다란 원탁 30개가 쫙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무대는 여러 원탁의 한가운데 360도 열린 무대로 준비되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날 원탁토론 발제문 발표는 내가 할 예정이었다. 분명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문서로 준비된 발제문을 잘 요약하여 발표하는 자리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봐도 이런 무대에 의자와 책상은 어울리지 않았다. 난데없이 발제문 스피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내 머릿속은 정치대회장의 하얀 벽과 하얀 바닥처럼 새하얘졌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발제문 스피치가 지나갔고, 원탁토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규모 원탁토론, 이게 되다니

정치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원탁토론이었다. 300여 명에 가까운 참여자들이 10명 내외의 모둠을 이루어 30개의 원탁에서 체제전환운동의 방향을 제안하는 발제문에 대한 공동의 토론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모으는 게 이번 정치대회의 목표였다. 준비하면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토론을 잘할 수 있을지, 토론 결과를 어떻게 현장에서 정리하고 모아낼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원탁토론은 뜨겁게 진행됐다. 물론 몇몇 테이블은 다양한 참여자 분포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말이다. 걱정했던 원탁토론이 잘 진행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운동의 전망’을 찾고자 이 자리에 함께했던 이들의 강렬한 참여동기 덕분이었다. 각자 자리와 현장에서 느꼈던 운동의 답답함의 이유와 고민을 나누고픈 마음, 자본주의 비판은 다들 많이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자는 운동은 없다고 느낄 때, 그 운동 하자면 모이는 이들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열띤 원탁토론을 만들어냈다.

원탁토론 발제문에는 체제전환운동을 함께 시작하자며 크게 3가지 제안을 담았다. 1) 체제전환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와 단절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내는 운동이라는 것, 2) 체제전환운동이 ‘민중의 세력화’를 위한 거점이자 조직가가 되자는 것, 3) 이곳에 모인 우리가 체제전환운동의 주체가 되어 서로를 조직하자는 제안이 그것이다. 이러한 제안과 방향에 많은 이들을 공감하면서, 이런 자리를 계기로 스스로부터 체제전환운동으로 새롭게 조직되어야 할 필요성, 이를 위한 공동의 노력과 관계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와 단절하는 체제전환운동의 전망을 현실에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민중의 세력화’라고 표현된 구체적인 운동의 모습들을 함께 조직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현재 사회운동의 상황이 이런 전망을 개인이 품고 있더라도 운동으로 펼쳐내기 어려운 상황임을 나누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체제전환운동’으로 우리가 만나고 서로를 조직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할 수 있었다. 

한편, 22대 총선을 앞두고 사회운동의 여러 고민 속에서 출발한 ‘정치대회’인 만큼 지금의 답답한 총선 상황과 진보정당운동,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도 원탁토론에서 나눠졌다. 이번 정치대회 부제인 ‘사회운동의 정치’를 시작하자는 것에는 사회운동과 정당운동/정치운동의 왜곡된 분업관계를 넘어서는 ‘민중의 세력화’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들도 함께 나누었다. 아직은 그 형태가 무엇일지, 체제전환운동이 제도정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실천을 할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 운동이 한국사회에 제대로 등장하고 조직돼야 할 것이다.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이후

300여 명이 모여서 집회 형식의 결의대회가 아닌, 체제전환운동의 전망과 실천에 대한 원탁토론을 진행했다. 그만큼 함께 모인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확인되기도 했고, 공동의 경험과 역사를 만들지 못해왔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치대회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서 자본주의 체제와 단절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을 조직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열망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사회/정치운동의 한계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역과 현장에서 해방의 꿈을 잃지 않고 운동을 일궈온 ‘운동’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정치대회로 우리는 모일 수 있었다.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라는 오늘이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평등과 존엄의 세계를 향한 체제전환운동의 미래로 연결될 수 있도록 분투해야 한다. 드디어 정치대회를 잘 마쳤다는 홀가분함과 함께 묵직한 부담도 함께 느껴지는 2024년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