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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기후위기시대, 한 여름밤의 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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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밤 나는 에어컨 아래 소파에 누워 신나게 티브이를 보는 중이었다. 야식도 배달 중이었다. 그 야식에 술 한잔 곁들일 생각을 하니, 평소 나를 괴롭히는 걱정 따위는 온데간데없고,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자신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바로 그때 낯선 굉음이 두어 번, 티브이와 전깃불이 격렬하게 깜빡거리더니 ‘탁’ 하고 모든 게 나가 버렸다. 불길한 예감 속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건 매한가지였다. 오직 소방차가 내뿜는 경고등이 건물 외벽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내가 사는 40년 된 다세대주택에 불이 났다.

때마침 외출했던 동거인도 돌아왔다. 소방관들이 화재가 발생한 계량기가 있는 건물로 진입하고 곧이어 작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가운데 오토바이 한 대가 동네로 진입하는 게 보였다. ‘타이밍하고는’. 내가 시킨 바로 그 야식이다. 오토바이는 귀신같이 내 앞에 와 멈췄다. 나는 000호 오셨죠? 하고 손을 내밀었다. 동거인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머쓱해 하며 야식을 받으려는데, 배달노동자가 잠시 봉지를 들고 있어 달라고 요청한다. 배달 인증이다. 이 난리 통에 삐질 웃음이 새어 나온다.

동네는 소방관, 경찰관 그리고 한전 직원까지 각종 유니폼으로 넘쳐났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추가 화재 가능성을 차단한 소방대원들은 더 할 일이 없어 보였다.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하긴 어렵다고 했는데 그 말은 책임을 규명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전기를 복구할 때였다. 각 세대로 전기를 보내는 내선이 타는 바람에 27세대 주택 전기가 끊겼기 때문이다. 한전이 문제를 해결하겠거니 기다리는데, 웬걸. 전선이 지하로 연결된 탓에 한전이 처리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상한 이유라는 생각했지만 ’그게 원래 그렇다는‘ 한전 측 말에 주민들은 항의하기보다 수긍했다. 한전이 한 일이라곤 120다산콜센터에 연락해 전기를 복구해 줄 민간업체를 선정하라는 조언이 다였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동네 분위기가 술렁였다. 한 주민은 떠날 채비를 하는 소방대원에게 우리만 남겨놓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호소했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 ‘이 더위에 우릴 이렇게 버리고 간다고??’ 소방관과 한전 직원이 차례로 자리를 뜨고, 가장 역할이 없어 보였던 경찰관 두 명만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겠노라 무전을 쳤다. 그 ‘조금 더’라는 시간 개념이 너무 짧은 것으로 드러나 보는 내가 다 겸연쩍었다. 짙은 녹음이 에워싼 여름 산 아래 불 꺼진 우리 동네는 검고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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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시간 내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없자 동거인과 나는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한 손에 야식 봉지를, 다른 한 손으론 핸드폰 후레쉬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더듬더듬 캠핑 장비들을 뒤적거렸다. 작은 랜턴 하나와 휴대용 후레쉬 하나를 찾았다. 비상 상황에 대처할 적절한 도구가 있다는 사실은 기쁨과 자신감을 가져다줬다. 처음으로 내 볼품없는 캠핑 장비에 효용감을 느꼈고, 캠핑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다소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다. 분주하게 야식을 세팅하고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았다. 맥주 한 캔과 소주 한 병, 그리고 해산물과 회 한 접시가 식탁에 놓였다. 사무실 컴퓨터가 애를 먹이는 통에 집으로 와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던 그도 별수 없이 소맥을 말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전기에 의존적인 현대인의 삶에 대하여, 이 와중에도 야식을 먹고 있는 블랙 코메디 같은 순간에 대하여, 전기만 끊겼지 물 공급은 계속된다는 안도와 그러나 우리 집 변기는 전기 없이 용변을 내릴 수 없는 물건이라는 불운에 대하여, 또한 인덕션으론 라면도 못 끓이는 현실에 대하여 한탄하며 먹고 마셨다. 행복한 야식이라기보다 비상식량을 먹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는데 어쩌면 오늘 일이 앞으로 벌어질 더 큰일의 전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동거인은 배만 불리고 싸 들고 온 일거리를 그대로 들고 다시 사무실로 향했고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민간업체 두 군데가 오고 있다고 했다.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전기 일에 지식과 경험 있는 주민 덕에 일은 비교적 신속하게 처리되고 있었다. 새벽 1시경 한 업체와 계약을 맺었고, 이 동네 총무를 맡고 있는 나는 그 새벽 ATM기를 찾아 거금의 공사 자재비를 입금하였다. 집에 돌아와 보니 캠핑용 후레쉬 하나는 전원이 닳아 꺼져 있었고, 싸구려 랜턴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충전기를 찾아 후레쉬를 콘센트와 연결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무 쓰잘데기 없는 짓이었다. 더위에 몸을 뒤척이다 바닥에서 새우잠을 잤다.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부터 작업이 시작된 모양이다. 주민들이 주차장에 모여 작업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도 멀찍이 자릴 잡고 작업 진행 상황을 지켜봤다. 계량기를 고치는 일과 전기 개통 작업이 동시에 이뤄져야 했는데 그 모든 일을 한전의 협력업체가 오롯이 담당했다. 작업은 크게 외선과 내선 작업으로 나뉘었는데 민간업체 사장은 외선 작업을 위해 사다리차에 올라 전신주와 전선을 연결했다. 날이 더워 손에 땀이 나 작업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고 했다. ‘손이 쩍쩍 달라 붙는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건 전기가 통한다는 의미였다. 과거엔 이런 작업을 하다 전기 기술자들이 ‘많이 죽었다’ 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사다리차 업체 사장은 전기 기술자를 전신주 가까이 올려다 주면서 연신 ‘조심하세요’. ‘(사고 날까) 무서워요’와 같은 말을 했다.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 무섭다고 하니 그제야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한 감이 생겼다. 민간이 한전을 대신해 전기 복구 작업을 하는데 사고가 나면 딱히 책임을 물을 곳이 없는 구조라는 사실은 아찔했다. 가만 보니 단지 내 전신주들도 하나같이 기울어져 있다. 이 동네 오래 산 주민은 한전과 KT에 교체를 요구한 지 여러 차례였지만 매번 돌아오는 답은 ‘조금 더 두고 보자’거나 ‘배정된 예산이 없다’였다고 알려줬다. 그럴 때마다 그는 ‘큰 사고 나 봐야 정신 차리지’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했다. 감지되지 않는 위험은 잘 없는 법이고, 대처하지 않는 위험만이 도사리고 있다는 평소 생각이 또 한 번 강화되었다.

그때 사다리차 위에서 들리는 소리 “붙었다!” 두 개로 이뤄진 다세대주택의 한 개 동에 전기가 성공적으로 연결됐다는 신호였다. 마침 내가 사는 동이다. 그 길로 편의점에 들러 라면 봉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부리나케 에어컨을 켜고 라면을 끓였고 먹고 난 후 부른 배에 손을 얹고 잠들었다. 나머지 동에 전기가 들어온 건 오후 2시께. 애를 쓴 반장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평소 미심쩍게 여겨온 인사였는데 여간 책임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돌아가는 상황을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고, 꼭 필요한 정보를 제때 알리고 결정했다. 덕분에 불필요한 불안을 느낄 새가 없었다. 한편 나야말로 동네 주민들이 미심쩍게 생각한 인물이었을 터였다. 이사 온 지 3년이 넘도록 제대로 알고 지내는 주민 하나 없는데 주민 단톡방에선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는 부류였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어쩌다 총무로 선임되어 이번 일에 손을 거들고 있으니, 지나가던 주민은 일없는 동네에 하필 큰일 터졌을 때 감투를 써 고생이라며 놀려댔고, 또 다른 주민은 고생한다며 아이스커피를 내어주었다. 내 평생 그리 맛있는 커피는 처음이었다. 원두에서 어떤 품격이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그 주민이 말했다. “이거 카누여” 세상 가장 믿지 못할 게 내 미각인 줄만 알어….

새날이 밝았다. 화재가 난 계량기에서 다시 스파크가 튀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기가 복구되었지만 안전한 상태는 쉽게 복구되지 않을 모양이었다. 우리 동네 화재는 설비 용량에 비해 많은 전력을 사용한 탓에 부하가 걸린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여름 전력 수요가 역대 여름 중에서 가장 높다는 보도가 나온다. 앞으로 필수적인 전력 수요는 더 늘어날 게 뻔하니, 이런 사고는 더 자주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기후위기의 맥락을 배제하고 이해할 수 없는 그날의 사고 현장에서 경찰, 소방관, 한전 모두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는 말을 하였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건 남겨진 우리 몫이었다. 정녕 우리네 삶이 언제든 재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있었다. 작년 반지하 폭우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경북 산사태가 그 증거였고 기후위기 시대 계속 지어지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와 핵발전 확장이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대안으로 거론되는 현실이 그 증거였다. 나는 왜인지 그 저녁 그 정전을 마주하고 읊조렸던 말이 떠올랐다. ‘올 것이 왔구나.’ 머리로만 알던 것의 실체를 마주했을 때의 공포감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물러설 곳이 없기에 이판사판 싸워야 할 때라는 각성이었을까. 괜히 비장한 마음이 되어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니 근데 잠깐만…동네에 불이 났을 뿐인데 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니… 동네 사람들아, 나 정말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활동가 다 되었나봐아… (소근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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