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일단, 친해지자? 이대로도 괜찮더라!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들의 2박 3일 철원 여행 후기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 으쌰으쌰 하나 되어 노를 젓는 가운데 찾아온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만난 급류를 신나게 타면서 희열 속에 고취되는 협동의식. 우습지만 10년 전 어느 날부터 내가 그려온 이상적인 한 장면이다. 그런 순간을 함께 보내고 나면 더 단단해져있을 거라는 기대로 품어온 로망. 그 로망을 실현하게 됐다. 인권재단 사람의 <일단, 쉬고 : 그룹> 지원 덕이다. 더불어 지원해보자고 마음 모아준 사랑방 동료들 덕이다.

 

어쩌다 다시 철원

 

6월 9일부터 11일, 2박 3일 동안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들이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내겐 세 번째 철원 방문이었다. 올 초 인권활동가대회를 준비하며 사전답사로 처음 가보고, 인권활동가대회 주요일정이었던 DMZ 순례에 이어 올해에만 세 번째. 다시 철원을 향하게 된 건 순례코스였던 승일교 위를 걸을 때 내려다보았던 한탄강의 물 색깔이 너무 예뻐서였다. “이곳에서 한여름 시원하게 래프팅을 즐겨라!” 맞은편 커다란 광고판이 우리를 향해 말을 건 것 같았고, 내가 품었던 로망이 구식이라고 놀렸던 동료도 이런 옥빛의 한탄강에서라면 래프팅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일단, 쉬고 : 그룹> 지원 공고는 그런 바람을 구체적인 여행계획으로 추진하게 이끌었다.

한 단체 활동가들끼리 가면 분명 회의를 할 테니 지원을 안 해준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좋아서 하는 게 아닌 회의를 절대 하지 않을 것이며, 2박 3일 함께 하는 시간을 잘 누릴 작정이라고 굳이 덧붙여 강조하며 지원신청을 했다. 우리의 여행 프로젝트 이름은 “일단, 친해지자”였다. 작년부터 1년 사이 3명이 새로 입방해 현재 7명의 상임활동가들이 사랑방 활동을 일구어가고 있다. 새로운 사람과 함께 하는 설렘은 바쁜 일상 속 어느새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익숙함 그 자체가 문제되진 않는다. 하지만 익숙함을 이유로 눈짓, 손짓, 말 걸기가 필요한 어떤 순간들을 지나치고 말 때가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어떤 틈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상과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지내며 그런 틈새를 발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비 예보 탓에 걱정스레 철원으로 향한 첫째 날, 첫 일정은 DMZ 용양보 코스 트레킹이다. 예보가 엇나가길 바라며, 약 2시간 반 소요된다는 트레킹을 위해 든든하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강원도 하면 메밀막국수. 줄 서 먹는 막국수집이라는데, 운이 좋아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작한 트레킹, 먼저 보이는 건 ‘암정교’라는 다리였다. 6.25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그 다리를 90년대까지도 건너 다녔다고 한다. 호숫길을 따라 본격 트레킹에 나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코스 중간 공사 때문일지, 비 때문일지 2시간 반이라던 트레킹은 1시간 만에 끝이 났다. 호수의 끝 맞은편, 영화 <고지전>을 떠오르게 하는 아찔한 산자락을 뒤로 하고 나왔다.

멈추는가 싶던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하늘이 뚫린 것 마냥 쏟아지기 시작했다. 망설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가보기로 했다. 마침 오늘이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발 마지막 날이었기에. 어떤 이의 페이스북에서 이곳에 갈 거라는 소식을 봤다는 동료의 정보망으로 오기 직전에서야 올해로 두 번째라는 이 페스티발을 알게 됐다. 공연 취소를 걱정했는데, 쏟아지던 비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페스티발 인증은 바로 팔찌. 다 같이 손목에 팔찌를 차고 입장해서는 각자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는 흥겹고, 누군가는 어색하고, 누군가는 다리가 아팠으리라. 우리의 숙소는 차로 20분 거리 포천이었다. 소고기는 내일 먹을 거니까 저녁은 돼지갈비로. 그렇게 첫날의 회포를 풀었다. 챙겨온 기타를 꺼내 부르기 시작한 노래가 늦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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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프팅을 하긴 했는데

 

둘째 날, 이번 여행의 동기인 래프팅을 하는 날이다. 물, 따뜻한 커피와 함께 수박도 깍둑썰기 해서 챙겼다. 힘껏 래프팅한 뒤 먹으면 꿀맛이리라. 예약한 래프팅 업체가 가까워지니 긴장된다. 오늘 함께 할 조교의 안내 따라 조끼 입고 헬멧 쓰고 노를 하나씩 챙긴다. 다시 차로 이동해 출발지인 승일교로 갔다. 무거운 순으로 왼쪽에 3명, 오른쪽에 4명으로 나누어 보트를 들고 내려갔다. 보트에 올라타자마자 조교의 구령을 따라 외치며 노를 젓기 시작한다. 하나둘 하나둘. 소리를 그것밖에 못 내냐는 조교의 타박이 당황스럽다. 그러나 우선 더 열심히 소리쳐야 할 것 같다. 하나둘 하나둘 으쌰 으쌰 앞으로 앞으로 뒤로 뒤로 멈춰 멈춰. 급류 탈 때 빠지지 않으려면 몸을 최대한 바깥쪽으로 빼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내 몸은 굳었다. 물살 따라 자연스레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굳은 채로 팔만 움직여 노를 젓다 보니 엉덩이가 저린다. 이렇게 엉성한데 앞으로 나가고 있다니 바람 덕이다.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트가 지나가는 물길 양옆 큼직한 바위절벽들이 멋지다. 어제 비온 덕에 그래도 물이 좀 찼다고 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물을 찾아 보트를 들고 이동해야 했다고... 어제 내린 비가 고맙다고 생각하는데, 저 앞 널찍한 바위에서 잠깐 쉬고 간단다. 그래. 여기에서 사진 한 장 남겨야겠다. 하지만 우리 누구도 휴대폰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물에 젖는다는 말에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 방수가방을 가져온 이도 있었는데 말이다. 조교에게 부탁하니 본인도 휴대폰을 놓고 왔단다. 아뿔싸! 래프팅 했다고 증명할 사진 한 장을 못 남기다니. 그래. 아쉽지만, 이 순간을 눈과 마음에 담자. 다시 출발해 고석정 옆을 지나는 길, 우리 쪽을 향해 사진을 찍는 듯한 관광객이 보인다. “우리 좀 찍어주시면 안돼요?” 절실하나 부끄러운 동료의 말이 다행히도 물소리에 묻힌 것 같다. 우리의 래프팅 사진은 도착하여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남았다. 시작할 땐 못 지었을 미소를 끝났기에 지으며, 땅위 보트에서 하나둘 하나둘 외치며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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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프팅을 마치고 허기진 배부터 채울까 했지만 오늘 가기로 한 소고기집이 아직 문을 열기 전이다. 마침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기도 해 구경할 겸 들린 시장에는 먹고 싶은 게 참 많았다. 메밀전병, 옥수수, 식혜, 핫도그 등 먹다보니 배불러진다. 소고기 먹어야 되는데... 노동당사와 소이산에 들러 좀 걷기로 했다. 노동당사 가는 길, 전에는 안보였던 널판이 있다. 한쪽은 남한, 한쪽은 북한이라 써있는 널판 위에 올라 널뛰기를 하는데, 이거 쉽지가 않다. 돌아가며 널을 뛰어보던 중 동료 한 명은 잠깐 하늘을 날았고, 나중에 보니 그 잠깐의 비상은 발목에 작은 상처로 남게 됐다. 남북정상회담처럼 빨간 옷, 파란 옷을 입은 동료들의 악수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소이산으로 향했다. 20분 정도 슬렁슬렁 오르니 전망대다. 우와~ 소리가 절로 난다. 철원 평야가 펼쳐지고, 저 멀리 북한 땅도 보인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다. 꼭꼭 눈에 담더니 저마다 휴대폰 파노라마 기능으로 이 풍경을 담아보려 애썼다. 배부른 마음에 이어 배를 채우러 간다. 얼굴만 하다니, 이렇게 큼직한 소고기는 처음 먹어보는 것 같다. 숙소에 돌아와 시장에서 산 핫바, 산딸기를 펼쳐놓고 먹고 마시며 이틀간의 여행 소감을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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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울 게 없어도 괜찮아

 

별다른 계획이 없던 셋째 날, 한탄강 협곡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뉴스를 마침 보게 되어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전에 먼저 숙소 가까이 있는 산정호수 둘레길을 산책하기로 했다. 근데 호수에 물이 하나도 없었다. 가물어도 이 정도로 가문 것인가 심란했다. 공사 때문에 일부러 물을 뺀 것이라는 카페 주인의 이야기에 안도하고,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두부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더없이 깨끗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 산 사이로 굽이굽이 오르내리며 공원에 도착했다. 왜일지 궁금하게 하는 비둘기낭이라는 이름의 폭포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드라마 촬영지로 나름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리고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200미터 길이의 하늘다리 위를 걸었다. 다리 중간 중간 바로 아래 강이 내다보이는 유리바닥으로 되어 있다. 오! 아찔하다. 2박 3일의 철원 그리고 포천 여행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폭우부터 눈부시게 맑은 날까지 매 순간이 다채로웠던 건 날씨가 따라줬기 때문이다, ‘2박 3일을 같이 보낸다는 게 망설임도 있었는데 별 생각 없이 지나갔다’, ‘재정 지원이 되니 배고프지 않게, 풍족하게 보낼 수 있었다’ 등등 이번 여행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누군가 물었었다. 이번 여행에서 새롭게 발견한 게 있냐고. 새롭다 싶은 건 없었다. 드라마틱하게 그렸던 래프팅은 팔과 엉덩이의 저림으로 남았다. 다행히 다수의 동료들은 예상보다 재밌었다고 했지만 말이다. 시련과 고난을 함께 이겨낸 희열 속에 짙은 유대감을 느끼는 건 드라마고, 현실에선 몸이 아플 뿐이었다. 환상은 깨졌고, 새로운 건 없었으나 그래서 한편으론 안도했던 것 같다. 성향도 성격도 경험도 다르고, 저마다의 거리들이 있지만, 현재 사랑방 활동가 7명의 조합과 관계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속해있는 이 공간과 관계가 내게 안전한 공간, 안전한 관계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익숙함이라고 표현해왔던 것 안에 함께 보내온 시간 동안 담기고 쌓이고 새겨져온 의미를 일부나마 발견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일단, 친해지자고 떠난 이번 여행을 마치며 남기는 말. “이대로도 괜찮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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