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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온 몸의 촉수가 평안해지는 날

12월은 기념하는 행사가 참 많아요. 12월 1일은 세계에이즈의 날, 평화수감자의 날이지요. 3일은 세계장애인의 날,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진 날, 18일은 세계이주민의 날이에요. 그러다보니 투쟁일정도 많아요. 게다가 올해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라 릴레이 인권선언을 해서 더 일정이 많지요. 겨울에 이렇게 싸움이 많은 것은 아마도 봄?여름?가을 동안 쌓이고 쌓였던 것들이 추운 겨울날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싶어 분기한 거겠지요.

눌리고 눌려 일어난 사람들이라 사연도 많고 울분도 많지요. 얼마 전에는 세계 에이즈의날 정부행사장의 연단에 서서 에이즈인권운동을 하는 단체 활동가들과 감염인 당사자들이 피켓팅을 했지요. 피켓팅이 끝나고 어찌할까 10초간 망설이는 동안 당사자가 구호를 외치는데 눈물이 왈칵~ 그 구호에는 그이가 병과 싸웠던 그 시간, 주변 친구들과 함께 정부와 제약회사에 맞서 싸우던 일 등이 한꺼번에 섞여 담겨 있는 듯 했어요.

어제는 세계장애인의 날이라 장애복지예산을 축소하려는 복지부에 항의하는 뜻에서 복지부에서 집회를 하고 국가인권위까지 행진할 예정이었어요. 최근에 대통령이 임명한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이 장애복지시설의 시설장-그것도 비리에 반인권전력까지 있는-이어서 국가인권위까지 갈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최근 정부가 도로행진을 불허하고 있고 강압적으로 막는 게 늘상 있는 일이지만 장애인에게도 그럴지는 몰랐지요. 하여간 종로 한바닥에서 도로를 차단하더니 전경들을 동원해 휠체어를 들고 비장애인의 팔과 다리를 잡고 들어내었지요. 시설에 계신 장애인분이 너무 화가 나고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싶었는지 라이터를 들고 자기 몸에 불을 붙이겠다고 했데요. 

저는 다른 쪽에 있어서 나중에야 그분을 만나 옷이 찢어졌길래 물어보고서야 알았지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아직 전경들도 인도에 있는데 눈물을 보이면 안 되는데 그분의 고통과 한이 온 몸에 전해져 눈물이 계속 흘러 어찌할 줄 모르겠더라구요. 20여 년간을 시설에서 그곳에서 본 게 세상의 전부인줄 알고 살았을 그분, 여전히 시설 비리장은 최근까지 당당히 있는 세상..... 이제 세계장애인의 날이라 거리로 당당히 나와 ‘장애인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것마저 물리력으로 막아서는 현실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요. 분신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처럼 요.

저는 눈물이 많아요. 예전에는 눈물 따위는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숨어서 울었더랬지요. 눈물만 많은 게 아니라 웃음도 많고 화도 많지요. 온 몸이 촉수 같아서 주변의 고통과 기쁨이 전해져요. 아메바처럼 머리로 전해지기 전 몸이 꿈틀거리지요. 그래서 마음이 많이 피곤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민감함이 인권운동을 하는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답니다. 타인의 고통과 눈물, 멍에 눈감지 못하게 하니까요. 언제쯤 저의 온 몸의 촉수가 평안해지고 그이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