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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성매매현장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열자

♤ 막달레나의집 엮음,『용감한 여성들, 늑대를 타고 달리는』, 삼인, 2002.5, 320쪽 ♠
장애인을 위한 섹스자원봉사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성매매 논쟁으로 방향을 튼 후, 벌써 세 번째 모임이다. 그동안 성매매의 합법화냐, 비범죄화냐를 두고 ‘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근원적인 물음에서부터 성매매와 연관된 사회구조적 문제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결론을 내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매번 지끈거리는 머리만 앉고 집으로 돌아올 뿐,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성매매 여성을 언제나 탈출을 꿈꾸는 ‘피해자’의 입장으로 바라봤던 나에게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하고 비범죄하자는 주장은 머리로는 따라간다 하더라도 심적으로는 전혀 동할 수 없는 께름한 무언가가 뒤엉켜 있었다. 여전히 여성의 몸이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 자체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강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용감한 여성들, 늑대를 타고 달리는』을 추천 받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연구자료 수집을 위해 성매매 현장으로 나섰던 다섯 명의 필자가 전하는 이야기이다. 글쎄, 성매매가 이슈화된 이후 쏟아져 나온 대중매체의 시나리오에 익숙한 탓일까. 여성들이 성매매 업소로 들어가기까지의 불행한 사연과 업소에서 당하는 폭력과 착취에 대해 구구절절 눈물 짜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 같았다. 이들이 나와 다름에 연민을 갖고, 같은 대한민국 여성임에 함께 분노해야 하며, 이들을 하루빨리 업소에서 구해내야 함을 다짐하고 책을 덮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정말 달랐다. 다섯 명의 필자는 철저히 기록자로서의 거리를 유지하며 성매매에 관여하고 있는 여성들을 화자로 내세운다. 성매매를 둘러싼 현장 밖에서의 비난이나 연민 등 통념어린 시선을 벗어나, 현장 안의 그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 막 성매매 업소에 출입하기 시작한 십대부터 성매매 여성이 된 중학교 동창, 업주로부터 도망 나온 여성, 성매매 중 끔직한 성폭행을 당하고도 ‘일’을 계속하는 마흔 일곱의 여성, 필리핀 출신의 기지촌 여성, 80년대 초 성매매 지역 여성들의 자치조직 ‘개나리회’를 이끌었던 여성까지 성매매 현장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직접 인용을 통해 보여준다.

이들의 증언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불법성 여부를 놓고 오갔던 수많은 논쟁 중에 성을 파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제외되었다. 첫 장에서도 언급 되어 있지만 성매매 여성의 피해 상황보다 ‘더 깊은 눈길로 돌아보아야 할 것들’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성매매 현장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 이를 미약하나마 자신의 ‘일’로 인정하고 있었다. 스스로 개선해야 할 생활 여건을 이미 잘 알고 있으며 ‘개나리회’ 같은 자치조직에서 보이듯이 연대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성매매 현장 밖에서 주체가 되어 ‘불쌍한’ 여성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붕어’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성매매에 대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이전에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들, 이 책은 이 고민을 우리에게 던진다. 궁극적으로 성매매 근절이 보다 나은 사회로 나가는 길이겠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강력한 법집행만으로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선 오랜 성매매 역사가 증명하듯,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인정하고 이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접근해서 보다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이들의 인권,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음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또한 이를 위해서 현장 밖의 우리가 성매매 현장의 여성들이 내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함을 용기 내어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