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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강정에서 본 두 얼굴

강정에서 본 두 얼굴
명숙(상임활동가) 보고 싶지 않은 탐욕의 얼굴

구럼비를 앞에 둔 짙푸른 바닷물이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부표에 A라고 쓰여 있고, 조금 더 가면 B라고 써 있는 말뚝 같은 것이 보였다. 제주강정지킴이 중 해상팀과 함께 바당올레를 하며 내가 본 ㅤㅍㅡㅇ경 중 가장 낯설면서 섬뜩한 것이었다. 하나는 삼성물산이 수주받은 건설(정확히 말하면 구럼비 폭파를 포함한 파괴행위)지역이고, 다른 하나는 대림물산이 수주받은 영역 표시였다. 부표이기는 하지만 내게는 말뚝, 아니 말뚝보다 더한 쇠침으로 보였다. ‘여기는 내가 이윤을 낼 곳, 건드리지마! 다른 건 관심없어!’라는 탐욕이 선명하게 보였다. 건설재벌의 탐욕이 땅도 모자라서 바다까지 나왔구나하는 생각에 답답했다.

위의 광경은 내가 얼마 전 인권단체들이 한 달 간 진행하고 있는 <제주강정인권지킴이>로 4일간 제주에서 있으면서 본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 탐욕의 얼굴은 그저 바다에 박은 말뚝뿐이 아니었다. 바당올레에서 본 것은 불법적인 구럼비 폭파도 있었다. 원래 화약을 사용하는 발파작업을 할 때에는 사이렌을 울려서 경고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발파를 했다. 폭파력은 커서 바다에도 울림이 퍼지는데... (그 근처에서 살아갈 바다생명들의 놀란 가슴과 병들어가는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그래서 그 앞에서 카약을 타고 있던 우리들도 폭파장면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지도 못했다. 또 다른 불법은 해양감시활동을 하면서 본, 오탁수방지막이 없이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발파나 공사과정에서 나오는 오물이 바다를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오탁수방지막이 설치된 상태에서만 공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일요일에 내린 비로 오탁수방지막이 다 찢어졌는데도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군과 건설사는 공사를 계속했다. 항의를 해도, 1인 시위를 해도 소용없었다.

보고 싶지 않은 탐욕의 얼굴을 마주한 나의 우울한 마음을 달랠 곳은 어디인가. 그렇게 당황하며 있는 나에게 조금씩, 아니 많이 보인 것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었다.

아프지만 맞서는 얼굴

강정의 일상은 기본적으로 아침 7시에 해군기지단 사업장 정문에서 하는 백배, 1인 시위, 그리고 오전의 미사, 낮의 예배, 저녁 8시 촛불문화제로 채워진다. 해군기지단 사업장 앞에서는 언제나 폭력이 오간다. 1인 시위를 하든, 미사를 하든, 예배를 하든 말이다. 공사차량을 막으려는 활동가들과 주민들, 종교인들, 그리고 그들에게 고함을 치는 건설회사 직원, 건설사를 보호해주려고 동원되는 경찰의 물리력. 하루에도 여러 번 이렇게 부딪치다보면 몸도 마음도 힘들다. 그 힘든 상태가 위태위태하다. 그래서 자주 강정에 가지 못하는 게 더욱 미안해진다. 누군가 교대해줘야 하는데... 누군가 보듬어줘야 하는데...

그렇지만 그/녀들은 나에게 힘을 주었다. 내가 도착한 둘째 날에 문정현 신부님이 몸이 완쾌되지는 않았는데도 강정이 마음에 걸려 다시 군산에서 제주로 돌아오셨다. 팔은 여전히 깁스를 한 상태이고 어깨와 머리가 여전히 아프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신부님은 건설사와 해군이 미사 중 공사를 하고, 오탁수방지막이 없는데도 공사를 하자 그에 항의하기 위해 레미콘을 가로막더니 레미콘 밑으로 누우셨다. 울컥했다. 팔이, 몸이 많이 쑤실텐데... 다른 신부님은 레미콘 위에 오르셨다.

일상적으로 온몸으로 공사를 막는, 그러나 사실상 막을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맞서는 행동은 종교인들만 하는 게 아니다. 거기서 살아가는 주민, 활동가들이 모두 하고 있다. 물론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저항은 그들에게 더 씨가 먹히지 않을 뿐 아니라 용역과 경찰이 가하는 폭력의 강도도 높다. 매일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본 활동가들. 특히 아이 엄마라는 한 여성 활동가의 굳은 얼굴은 너무나 선명하다. 함께 차량을 막으며, 1인 시위를 하며 올레꾼들에게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알리며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몸은 다시 뭍에 왔지만 할 수 있는 게 있을 터다.


강정의 기운을 받아

비록 강정에서 짧게 있었지만 나는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 왔다고 느껴진다. 아마도 강정사람들의 좋은 기운이 나에게 전해진 거겠지 싶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강정마을의 풍경과 어우러진 사람들. 또 2번의 해양 감시활동과 매일 1인 시위를 하며 얼굴도 까매졌고...... 햇살이 금빛으로 땅에 착지하고 바람이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는, 거기에 반응하는 나무들이며, 키 작은 꽃이며 가득한 강정마을의 모습을 그/녀들과 함께 계속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되새긴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그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 마음이면 이곳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 제주에 갈 일도 많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