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타로가 준 선물

타로카드를 배우기 시작한 건 2012년이었어요. 안식년이었지요. 처음부터 그런 계획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 전부터 흥미를 느껴서 관련 책을 읽으며 타로카드를 만지작거리긴 했죠. 강좌 같은 것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 아마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었겠네요. 우연히 타로 강좌가 있는 걸 알게 됐는데 마침 안식년이라 선뜻 신청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타로카드의 종류가 마더피스라서 더 끌렸기도 하고요. 마더피스(Motherpeace)타로는 수많은 타로카드의 종류 중 여성성과 우주와의 합일 같은 것들을 강조하는 특징을 가진 타로랄까, 여튼 그렇습니다.

요즘은 마더피스타로 심화 강좌를 다니고 있어요. 오래동안 손놓고 있었는데, 도움을 좀 구하고 싶었달까, 적어도 저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나에 대해서, 나를 둘러싼 어떤 상황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며 타로카드를 뽑아보고 타로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읽는 시간. 일이든 번잡한 생각이든 잠시 내려놓고 하나의 질문에 집중하다 보니 어지러운 마음들이 차차 가라앉기도 했어요. 그래서인지 매일 가볍게 뽑아보는 데일리 타로에서 강좌가 있는 날이면 '컵의 딸'이나 '컵의 아들'이 자주 나왔어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즐기거나 자신에게 필요한 거리를 확보하고 명상을 하는 카드이지요.

 

컵의 딸, 컵의 아들. 타로에서 컵은 물의 원소를 나타내며, 주로 감정이나 느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컵의 딸, 컵의 아들. 타로에서 컵은 물의 원소를 나타내며, 주로 감정이나 느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돈도 시간도 부담이었지만 신청하기를 잘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다니던 중, 정말 큰 도움을 받는 일이 있었어요. 타로도 생년월일을 실마리로 운명이나 성격을 살피는 방법이 있어요. 물론 타로는 사주나 점성학처럼 출생의 시간이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는 아닙니다. 다양한 카드 배열의 방법 중 연 단위로 인생의 주요 변곡점이나 운세를 살피는 방법이 있는 것이죠. 제가 사실 이 배열법의 도움을 한 번 받은 적이 있어요. 2015년이었는데, 연말에 너무 우울하기도 하고 한 해를 돌아보니 힘들었던 기억만 나던 참이었어요. 우연히 생애주기 타로를 떠올려보니 '아 올해는 이런 해였구나!', 내가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 보였던 거죠. 나에게 이런 해였구나 받아들이고 나니, 뭘 잘못했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등과 같은 류의 질문을 내려놓게 되고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신기하게도. (지금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음이 편안해질 핑계가 필요했는데 타로가 그 역할을 해준 건지도 모르겠네요.)

 

멀어지고 있던 타로가 그렇게 다시 찾아왔으니 가끔씩 올해의 타로를 떠올려보게 됐어요. 우연히 타로가 떠오를 때마다 내가 겪는 일을 거리두고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부작용이 생겼어요. 2017년의 카드보다 2018년의 카드를 미리 신경쓰게 된 거죠. 2018년의 카드는 'XV 악마'였거든요. 마음이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그걸 들여다보기보다 내년 걱정을 하는 거예요.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내년엔 또 얼마나 힘들어지는 걸까, 내년엔 내가 주위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옭아매고 힘들게 한다는 걸까 등등 악마 카드에 담긴 부정적 의미만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거죠. 그런데… 심화강좌를 들으며 제가 잘못 계산했다는 걸 발견하게 됐어요. 계산식의 반만 알아서, 2017년의 카드는 맞았지만 2018년의 카드는 악마가 아니었던 거예요. 헐.

올해의 카드는 'VI 연인'이었어요. 모든 카드의 의미에는 양면성이 있지만 악마보다 연인의 기운이 밝고 긍정적인 것은 사실이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그러나 큰 도움은 올해의 카드가 악마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취약한 상태라는 걸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올해의 카드를 잘못 계산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진심으로 안도하는 내 모습을 보았어요. 그게 뭐라고, 카드 한 장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마음. 내가 만들어낸 두려움과 불안들. 스스로를 가둔 감옥. 심화강좌를 듣지 않았다면 까마득하게 속은 채 '악마'만 떠올렸을 상상을 하니 강좌 듣기를 얼마나 잘했는지요. 이제 이런 나를 더 아끼고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마에서 연인으로. 강좌를 안 들었으면 어쩔 뻔 ㅡ, ㅡ;;
악마에서 연인으로. 강좌를 안 들었으면 어쩔 뻔 ㅡ, ㅡ;;,

2017년은 정권이 바뀌고 변화의 씨앗들이 가쁜 호흡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해였지요. 많은 사람들이 2017년은 정말 길었다고들 하는데, 그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바깥 사정 때문은 아니고 제게는 여러모로 마음이 힘든 해였습니다. 힘든 일이 너무 많았거나, 하나의 일로 세상 모든 일이 힘들어졌거나, 정신차리기가 쉽지 않은데 정신차리느라 소진된 해였다고나 할까. 주위 사람들도 비슷한 처지다 보니 잘 풀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타로의 큰 도움으로 저는 저한테 어떤 처방이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래서 올해는 심리상담을 받으려고 계획 중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받아봐야지 했는데, 그게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일까 싶어요. 시간도 내고 마음도 내야 하는 일이지만 그게 필요한 때인 듯해요.

왠지 이런 편지 내용 때문에 걱정하시는 분도 계실 듯한데, 저는 오히려 걱정이 덜 되기 시작했어요. 도움을 구하려고 마음먹고 보니 많은 것들이 벌써 새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제 성격이나 성질상 가장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도와달라 손 벌리는 건데요, 이제 좀 달라질 때가 된 듯하고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힘든 시간이었고 당분간도 그럴 테지만 이 경험이 내게 남겨줄 어떤 변화와 성장에 아주 조금씩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올해가 저물 즈음에는 내 안에서 '연인'을 발견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후원인 여러분들도 바깥으로 내면으로 삶의 소중한 것 하나씩 발견하게 되는 한해가 되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