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문득

“야 얘네 들어봤어?”

“그게 누군데? 니르바나?”

 

스무살이 되고서야 처음으로 해외의 락밴드라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그 밴드 이름이 너바나Nirvana였다. 같은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어찌나 껄껄거리며 웃던지 얼굴이 화끈거리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아니 도대체 왜? 니르바나 = 열반! 불교용어! 맞잖아!’ 책에서 읽은 내용을 확실히 기억하던 나는 당시 왜 웃음을 샀는지도 알도리가 없었다. 그저 영어식으로 읽으면 발음이 너바나에 가깝고 그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때 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재수생이었는데, 주위 친구들은 이미 학원을 땡땡이치고 공연도 다니고 락페를 다녀오는 등 촌사람으로서는 생경한 환경에 혼자 동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그 사건 이후에 몇몇 친구들의 ‘도움’으로 락밴드에 입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들어버릇하던 음악이 아니어서인지 도대체 소리만 지르는 락밴드와 쉽사리 친해지지 못했다. 너바나니 앨리스인체인Alice in Chain이니 하는 팀들은 도무지 내 입맛이 아닌가보다 싶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것이 영국의 락밴드 오아시스Oasis였다. 이 팀은 음악도 들어보기 전에 형제가 중심인 밴드면서 서로 미친 듯이 싸우고 인터뷰에 나와서 다른 팀도 욕한다는 소문을 듣고 ‘역시 음악은 또라이가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선입견을 갖고 들어본 오아시스의 음악은 웬걸 “당신이 가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세요. 낮이건 밤이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런 내용의 가사에 서정적인 멜로디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녀석들은 진짜 이상한 녀석들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한참을 빠져서 오아시스의 노래만 들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사건은 다시 발생한다. 재수를 마치고 취미밴드를 하는데 다른 밴드를 하던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된 날이었다. 그중 한 친구가 초장부터 약간은 건들거리는 표정으로 ‘악기 좀 연주하냐? 음악 좀 아느냐?’는 거들먹거리는 도발을 걸어왔고 나는 덥석 물었다. 한참 오아시스의 팬을 자처하며 오아시스 한국공연 티켓을 예매했던 나에게 저 건방진 태도는 용서할 수 없었다.

 

“내가 레드제플린 노래를 요즘 연습 중인데...”

“뭐 누구? 레드 뭐? 걔네 누군데? 난 오아시스밖에 몰라!”

 

그 자리 전부 밴드에 관심이 많던 친구들이었고, 시선은 전부 나에게 쏠렸다. 그랬다. 락이 죽어가던 90년대에 너바나가 심폐소생술을 했던 밴드라면, 락의 전성기라 불리던 70년대에는 레드제플린Led Zeppelin이 있었다. 다시 한 번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몰라도 상관없는, 오아시스가 좋으면 오아시스가 좋다고만 했으면 될 것을 괜한 이야길 덧붙였다.

 

그럼에도 취미밴드는 꾸준히 이어졌다. 레드제플린을 연습한다며 거들먹거리던 친구와 팀을 만들어서 매일같이 연습을 하고 밤새 술 마시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대단할 것도 없는 ‘음악적 견해’를 두고 니가 맞니, 내가 맞니 해가며 찢어지고 다시 하고를 반복했다. 뻔한 이야기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시간이 다시 못 올 시간이었다. 서로의 모름을 부담 없이 드러내고 더듬거려가면서 취향을 맞춰가던 그 시간 말이다.

 

문득 그 시간을 떠올리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가 참 꺼려진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락밴드건 음악이건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무지를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가능했던 관계였다. 이 관계에서 서로를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는 얼마나 아는가 모르는가와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였다. 단순히 친구 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공통의 이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끊임없이 이어갔기에 가능했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떠올리게 되는 것 역시 지금의 시간을 보내는 나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그게 음악이든 인권운동이든 내가 더 알고 더 고민하기 위한 노력과 별개로 함께하는 동료들과 허심탄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 공통의 고민을 갖기 위한 노력에 또 다른 나의 몫이 있다. 옛 친구들과의 기억을 떠올린 것은 아마도 개인이 아닌 단체의 활동을 이어나가며 점점 더 선명해지는 그 몫에 대한 고민이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