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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위기 청소년’을 만나는 어려움

인권교육센터 들에서는 ‘함께 걷는 아이들’ 재단과 함께 올해 위기 청소년 자립 지원 사업 ‘자몽’의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기관 등에 단지 돈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모니터링과 교류를 함으로써 새로운 청소년 자립 지원의 모델을 연구하는 것이 목표이다. 지원을 받는 기관들 입장에서는 돈만 주고 별 간섭을 안 하면 좋을 텐데, 매월 모여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간담회를 하자고 하고 인권교육도 참여하라고 하니 귀찮을 법도 하다.
언제나 재단 등의 지원을 받는 입장에 있던 나였는데, 이번에는 내가 지원을 감독하고 모니터링하고 지원받는 기관들을 부르는 입장이 되니 어쩐지 어색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여러 번에 걸쳐 탈학교, 탈가정 등의 비주류적인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을 간접적으로라도 만나볼 수 있고, 또 그런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 이들과 만나 경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는 매력적인 기회이기도 했다. 지난 3월 13-14일 1박 2일간, 자몽 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의 실무자들과 대표들이 첫 교육을 위해서 모였다. 청소년자활지원센터, 아동복지양육시설, 보호관찰소, 대안학교 등 다양한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기관의 실무자 등 약 20명 정도가 참여했다.

‘청소년’과 ‘문제행동’을 바라보는 관점


첫 인권교육의 주제는 ‘청소년’으로 잡았다. 본격적인 자립 지원 사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그들이 만나게 될 청소년들과의 관계 맺기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청소년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 청소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지원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로 구성됐다. 거기에 더해서 지원 사업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위기 청소년’이란 어떤 것인지, 그들이 처한 ‘위기’의 성격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내용을 더해보았다.
몸풀기 맘열기가 끝난 후, 가장 먼저 청소년의 인권과 청소년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사회가 일상적으로 청소년들에게 어떠한 폭력을 가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이 어때야 한다고 요구하는지를 사례와 이미지를 활용해서 다루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청소노동자 등 다른 소수자들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인권감수성 전반을 기르고 보는 관점을 바꾸기 위한 훈련도 간단히 했다. 그러고 나서는 “나는 아이들이 착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때려서라도 가르칠 건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청소년은 판단력이 미숙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휩쓸린다.” 등의 문장에 대해 OX로 답하기를 하며 청소년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들을 풀어놓았다.

다음으로 이어진 프로그램은 문제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에 관한 것이었다. 학교에 지각하는 청소년,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청소년 등 일상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문제들을 놓고 직접 그런 행동을 하는 청소년과 대화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모의 상담을 해보았다. 그러면서 학교나 게임 등 청소년들을 둘러싼 환경과 마주하게 되는 여러 문제들을 탐구해볼 수 있었다. 참여자들은 대개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인 행동 변화를 촉구하거나 약속을 받으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학교가 별로 좋은 곳이 아니지만 그래도 학교를 다녀서 졸업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는 청소년 지원 사업 종사자들의 고충도 이야기되었다. 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 청소년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를 마지막 사례로 논의하면서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사례들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청소년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하고, ‘문제행동’이 아닌 구조와 문화를 살피자는 제안을 던졌다.

“물어보는 이유가 뭐에요?”

저녁을 먹은 뒤 바로 이어서 <잔혹극 - 무엇이 청소년을 위기로 내모는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앞서 한 인권교육 중에도 청소년을 다른 각도와 관점에서, 인권감수성을 갖고 보자는 제안에 참여자들은 약간의 동요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실제로 청소년들을 만날 때, 당장의 어려움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고민들을 안고 있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이른바 ‘위기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함께 탐구해보고 분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분 탓이었을까, 프로그램을 진행할수록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잔혹극 - 무엇이 청소년을 위기로 내모는가?>는 탈가정, 범죄 등의 상황에 처한 청소년 2명을 실제로 인터뷰한 것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참여자들은 먼저 그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기초자료를 읽고, 그들이 부딪히고 있는 ‘위기’가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모둠 활동을 통해 정리하였다. 빈곤, 학대 등의 것들 말이다. 진행 도우미들은 한 명의 청소년을 연기하고, 참여자들은 도우미들에게 그 청소년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청소년들이 처한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임을 방증하듯이, 참여자들은 질문을 고르는 데 꽤 난감해 했고 모둠에서 준비한 질문을 다 못하기도 했다.

첫 번째 사례는, 부모가 이혼한 후에 아버지와 형제들과 살면서 가정 안에서 폭력 가해․피해를 경험하고 가출과 복귀를 반복하다가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었다.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던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반문에 부딪히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떤 게 제일 힘들었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물어봤다가 “뭐까지 해줄 수 있는데요? 말하면 다 해주실 거예요?”라는 답에 말문이 막혔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냐는 질문에는 “레스토랑 같은 데서 서빙도 하면서 일을 해보고 그렇게 돈 벌어 자유롭게 여행도 가고 돈을 쓰고 싶다.”라고 답했다. ‘청소년’은 어른들이 자기한테 왜 자꾸 이것저것을 궁금해 하고 묻는지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고, 그냥 호기심에 묻는 질문인지 아니면 자기를 정말 이해하고 돕고 싶어서 묻는 질문인지를 들으면 알 수 있다고 했다. 항상 주변 사람들로부터 과한 관심을 받는 위치에 있는 청소년들, 그러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없는 청소년들의 처지를 드러내주는 이야기였다.
상대적으로 어려운 분위기 속에 두 번째 청소년의 순서가 됐다. 두 번째 사례는 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학교에서 괴롭힘 당한 경험이 있으며, 가출했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학교를 장기간 쉬게 되고, 이후 집에는 돌아가서 당장은 어머니와 살고 있지만, 어머니와 관계는 회복되지 않아서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 청소년이었다. 참여자들은 어머니와의 관계에 집중해서 질문을 하는 편이었는데, ‘청소년’이 “엄마가 자꾸 나한테 잘 하라고 한다. 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런데 뭘 잘하라는지 물어보면 말해주지 않는다. 뭘 더 잘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하자 “너무 똑똑해서 말(질문)을 못하겠네.”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른바 위기상황에 처해 있는 청소년들은 그 위기상황에 대해 당사자로서 다른 누구보다도 많이 경험해보고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그 상황과 현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다른 누구가 아닌 그 본인일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그런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고 답을 내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다. 그에 대해 무언가를 지원하고 개입하려는 사람들은 당연히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질문의 시간이 끝나고 나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컨대 제일 힘든 게 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같은 질문들은 자주 나오는 단골 질문들이었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과연 어땠을까? 청소년을 연기한 진행자는 “그걸 왜 몰라?” 하는 생각이 들고, 뭐를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저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제일 힘든 것 하나를 딱 집는 것도 어려운 거고 어디서부터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어서 답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었다. 청소년들의 입장을 헤아려야 하는 필요성도 이야기가 나왔다. 가령 두 번째 사례에서 어머니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계속 주문했지만, 사실 어머니를 이해하며 화해하기 위해 가장 고민하고 노력해왔던 사람은 그 청소년 당사자였을 거라는 것이다. 그런 역사와 노력을 인정하지는 않고, 청소년에게 더 노력하라고 은연중에 요구하는 것으로 들렸을 수도 있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른들이 쉽고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며 던지는 많은 질문들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대답하기 어렵고 불편한 질문일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실제로 사례의 주인공이었던 청소년 당사자들은 대답하기 어렵거나 불분명한 질문을 받았을 때 비슷한 반응을 보였었다고 했다. 그럴 때면 청소년들이 “왜 아는 척하세요?”, “뭘 해줄 수 있는데요?”라고 반문했고, 그런 반문 앞에서 궁해질 수밖에 없는 지원자들의 상황도 이야기됐다.

앞으로의 과제-‘위기’, ‘자립’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교육 참여자들이 대부분 청소년들과 많이 부대끼며 지내온 이들이었기에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나보다 훨씬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나보다 능숙하기는 했지만, 참여자들이 내 기대보다는 질문하기를 어려워하기도 했다. 물론 갑자기 마주한 청소년에게 충분한 사전 친밀감 형성 없이 질문하는 것이었기에 다소 당황스러운 작업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실제 청소년이 아니고 질문을 하면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는 ‘연기자’였기에 그만큼 더 쉬운 면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청소년들을 만나는 방식이나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일에 대해 앞으로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실제 사례를 계기로 하여 ‘위기 상황에 처한 청소년들’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해보고 ‘위기’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좀 더 청소년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한 열쇠말 같은 질문을 찾아주기를 요청했었다. 하지만 대화의 양상은 주로 상담처럼 전개되었고 청소년들에게 문제해결을 위해 구체적인 도움이나 행동 지침을 제시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참가자들이 청소년 지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좀 더 실천적으로 상황에 밀착해서 개입하려고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때문에 거리를 두고 위기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더 큰 어려움이 생겼고, 의도치 않게 참가자들이 반문에 부딪히거나 지적을 당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직접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매일 같이 겪는 막막함과 어려움을 여유를 가지고 함께 짚으면서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청소년을 만나는 실무자 개개인의 능력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 자체가 어려운 것이고, 또 거기에 대해 모르는 제3자로서 이해하고 지원하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것이었다. 실제로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막막함을 느끼게 되는 일도 잦았다.
청소년들을 피해자로만 보지 않고 나름의 경험과 삶을 헤쳐 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지원자들이 그 청소년들을 잘 모른다는 마음으로 이해하기 위한 질문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과 실무자라는 1:1의 관계만이 아니라 그 청소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관계와 상황, 그리고 기관의 성격이나 자원을 포함해서 실무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관계와 상황, 쓸 수 있는 자원 등을 함께 보며 만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이후에 교육과 소통 과정에서는 우리가 바라보는 청소년들의 ‘위기’ 상황이 어떤 것인지 등을 더 이야기해나갈 계획이다. 원래 계획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 청소년들이 부딪히는 ‘위기’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토론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부족으로 이는 모둠에서만 작업을 하고 추가로 종합토론을 하지 못하고 넘어가게 됐다. 그랬기 때문에 마치 진행자가 자신들에게 더 사려 깊을 것을 요구하기만 하는 것 같아서 불만도 생기고 답답함을 느낀 참가자도 있을 것이다. 이는 이후에 있을 교육 자리에서 다루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위기’에 대해 이야기한 뒤에는 앞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청소년 ‘자립’과 ‘자립 지원’이 어떤 것인지를 함께 찾아가는 교육을 할 계획이다. <자몽> 지원 사업을 통해서 청소년인권을 만난 청소년 지원 기관의 사람들이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들과 같이 새로운 청소년 자립 지원의 개념을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이날의 인권교육이 참여자들로서는 어쩌면 ‘대략 난감’한 질문과 대화의 경험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첫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기대한다.
덧붙임

공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