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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공룡트림] 펭귄 수영학습 거부선언

『난 남달라!』 (김준영 글, 그림)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똘몽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구구단과 수학숙제가 문제였다. 구구단을 9단까지 모두 외워가야 하는데다 그 동안 밀린 수학숙제를 모두 제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나는 옆에서 그래도 학교에는 가야하지 않겠냐고, 숙제 안 하면 어떠냐고, 근데 뭐 구구단은 외워야 살면서 편하긴 한데 어쩌고저쩌고 횡설수설 꼰대정신을 발휘하는데, 결국 똘몽이 울음을 터뜨리며 마구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난, 학교가 싫어. 학교는 선생님이 알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곳이야. 더 솔직히 말하면 강제로 알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해. 구구단도 선생님이나 엄마가 하라고 할 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마음먹을 때 공부하고 싶어. 나는 스스로 하고 하고 싶은 것을 실천하면서 살고 싶어!”

그런데 하필 내가 이 말을 들은 뒤에 한다는 질문이, “그나저나 실천이 뭔지 알아?” 의외의 단어라 정말 궁금해서 물었지만 똘몽은 성질내며 말했다. “엄마, 실천 몰라? 실천!” 결국 똘몽은 하루 학교를 쉬기로 했고 그 대신 집에 혼자 남아 구구단을 ‘조금’ 외워 보겠노라고 했다. 그 동안 3단까지 외웠던 똘몽이가 이 날 6단까지 외우고는 밤에 잠들며 말했다. “와, 내가 6단까지 외우다니!” 똘몽은 인간이 날마다 진보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잠들었다.

그림책 『난 남달라』는 똘몽이가 추천한 책이다. 몇 달 전, “ 『난 남달라!』 읽어봐. 재밌어” 라고 했다. 어른이 추천하고 어린이가 읽는 것에 익숙해 있는 틀을 바꿔서 어린이가 추천한 책을 어른이 읽어 보는 것도 재밌겠다. 똘몽이 처음으로 추천한 책이라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며 읽어보니, 오홋, 뭔가 ‘남다른’ 이야기다. 펭귄이 수영학습을 거부하다니! 똘몽이 ‘강제’ 구구단 학습을 거부한 것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펭귄 ‘남달라’는 획일적 수영학습을 반대한다.

수영 학습을 거부하는 펭귄


남달라는 수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달라는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서 수영을 배웠더랬다. 펭귄 수영학교는 팔을 몸에 바짝 붙이고 몸을 둥글게 말아 뱅뱅 도는 ‘뱅뱅수영’, 손을 위로 쭉 뻗고 몸을 회오리처럼 빠르게 돌리는 ‘회오리수영’, 출렁출렁 춤추듯 양팔을 움직이는 ‘말미잘 수영’까지 배워야 한다. 친구 쿠쿠는 “수영을 썩 잘하지는 않지만 열심히”했고, 폴리는 수영을 잘 못하지만 “글쎄...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말미잘 수영을 연습했다. 이유는 모르면서도 순응하여 열심히 수영 연습 중인 친구들 사이에서 달라만이 유일하게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말미잘 수영 같은 걸 왜 해야 해요?” 선생님은 달라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달라야, 너만 왜 그러니? 모두 열심히 하잖아. 얼른 줄 서!”


질문이 거부된 달라. 달라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장을 넘기니 달라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있다. 눈썹은 매섭게 비뚤어져 있고 눈은 커다랗고 다부지다. 입은 날카롭게 쪽 뻗어 벌렸다. 그리고 커다란 글자. “나, 수영 그만 배울래요!” 달라의 단호한 표정과 선언이 강렬하게 그림책 양쪽 면을 채우고 있다. 그 다음 장을 넘기면 달라 아빠가 부드럽게 답한다. “그렇구나, 그럼 달라 마음대로 해 보렴” 달라는 그 뒤 콩콩뛰기, 얼음 구멍 바라보기, 얼음집 짓기, 물고기 잡기 등 자신이 원하고 재밌는 것을 찾기 위해 ‘실천’한다. 그 중에서 미끄러지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는 것을 발견한 달라는 최선을 다해 미끄럼타기 놀이를 한다. 열중하여 미끄럼타기를 하다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미끄럼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된다.

달라는 나중에 커서 코치가 되는데 달라의 소식을 듣고 친구들도 저마다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찾기로 결심한다. 달라만 1등을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 역시 좋은 영향을 받아 즐거운 삶을 누리게 된다.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저마다 자신의 개성을 발현하면서도 함께 즐거운 관계다. 몇 가지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꼭 달라는 1등을 해야 할까. 1등만이 인정받는 세상? 이라는 의문을 던질 때, 똘몽이가 비평을 보탠다. “그냥 놀았는데 1등 했으니까 좋잖아!” 이 책은 ‘성공’에 방점을 찍은 책은 아니다. 펭귄사회에서 미끄럼타기는 인정받지 못하는 종목이다. 여기서 1등의 의미는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선택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달라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단지 성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용히 바다 속을 응시하던 달라가 “수영 한번 해 볼까?” 하고 마음먹는다. 여기서 달라의 표정은 처음 수영학습을 거부하던 달라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달라가 수영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수영’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다 속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정말 멋지다! 더 보고 싶네!”

『난 남달라!』 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다양한 선택을 가로 막고 있는 우리 교육 현실에 비판의 화살이 꽂혀 있다. 무엇인가를 배우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선택’이다. 수영학교 대신 미끄럼학교를 갔다면 달라가 그만큼 즐거웠을까? 아마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여기서 중점은 수영대신 미끄럼이 아니라 그것을 선택한 결정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개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수업을 거부한다는 것은 불온한 것이 된다. 달라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수영학교를 나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몸으로 찾고 그것을 즐기는 과정 속에 있다.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엉뚱한 것을 선택하더라도 말이다.

수영을 거부했던 달라가 수영을 해보기로 마음먹는 마지막 장면은 언제 무엇을 배울지 여부 역시 자기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한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펭귄이라 하더라도 “말미잘 수영까지 배울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펭귄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수영이라 하더라도 그 자신이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는 마음을 먹을 때 시작되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하고 말하고 있다. 바다 속이 궁금해서 그 속에 들어간 달라는 뱅뱅수영, 회오리 수영, 말미잘 수영이 아닌 해파리 수영, 불가사리 수영을 새롭게 만들어서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임

이선주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