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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주의 인권이야기] 출퇴근길에서 생각 하는 것들 - 나와 당신의 거리

장애인 샐러리맨의 일상 ②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을 하면서 생각한다. ‘서울, 수도권은 정말 크구나!’ 그 거대함에 정신이 아찔하다가도, ‘다들 나처럼 거리에서 하루 두 시간 이상을 쓰는구나’라는 생각에 마구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러다가 ‘장애인의 이동권은 정말로 보장이 되었는가?’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2000년대 초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것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도움을 받기는 하였지만 학교도 다녔고, 시내에도 다녔고, 특별하게 어느 곳을 내 장애 때문에 못 간다는 생각은 해보질 못했다. 어쩌면 나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덜했을 수도 있고.

아주 가끔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 이를테면 수학여행에서 산을 오르는 것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에게 ‘거리’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교 입학 후 드디어 문제가 되었다. 원래 서울에 살았던 이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몸은 서울이라는 도시, 대학 캠퍼스라는 큰 공간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비교적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지만 집을 나서 학교 강의실까지는 걷고, 버스를 타는 것을 모두 합쳐 족히 40~50분이 걸렸는데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지방에서는 그 정도면 행정구역상 옆 ‘동’을 다 지나고 도시 끝에서 끝까지 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면 이런 거리를 문제없이 걸어 다닐 수 있어야 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주위의 친구들은 학교를 잘 다니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또 서울에서의 거리는 사람이 걸어서 갈수 있는 거리가 아닌 지하철역이나 버스의 정류장 개수로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것도 적응되지 않았다. 이것들의 거리가 걸어서 짧게는 10분에서 20분이 걸리고, 서울에서 이 정도 거리면 상당히 가까운 축에 속하는 편이라는 것은 서울 생활을 시작한지, 성인이 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이후 직장 생활을 수도권에서 하면서 다시 장애인 이동권이 잘 보장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제 길거리에는 저상버스가 그래도 꽤 보이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지하철역들을 볼 수 있다. (나는 지하철역의 어느 출입구든 접근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이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그들의 이동권은 보장되었는가? 물론 이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던 예전보다 상황은 많이 개선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예전에는 어디론가 이동을 하고 싶어도 ‘ 밖으로 나가 이동하는 것’ 그 자체가 막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지체 장애인 스스로가 ‘엄청난 노력’ 및 ‘체력소모’, ‘금전적인 소모’를 한다면 그래도 이동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으니, 이것은 그래도 좀 나아졌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 ‘가능성’은 삶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장애인 이동권은 여전히 보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장애인의 이동권이 비장애인의 그것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 제도를 살펴보자. 현재 장애인 콜택시는 서울에서 300대가 운영 중이며 실 운영대수는 258대이고(10%는 수리를 위한 휴무) 10개 조로 편성되어 시차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실제로 이용 할 수 있는 대수는 이보다 적다. 나는 주위의 휠체어 장애인 중에 이 콜택시를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이용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대부분 ‘콜’ 후 2~3시간을 기다려야 택시가 도착하곤 했다. ‘콜’택시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저상버스의 경우는 어떠한가? 버스 정류장에서 저상버스가 도착할 경우 휠체어 장애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천천히’ 버스를 ‘자연스럽게’ 탈 수 있는 상황인가? 버스 기사 분들은 항상 버스간의 배차 간격을 맞추기 위해 쫓기고, 버스는 만원은 아니더라도, 휠체어가 들어갈 자리는 언제나 여유롭지 않다. 휠체어를 끌고 이 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지하철도 다르지 않다. 지하철 적자를 줄인다고 낮 시간의 배차간격을 조절하면, 지하철의 상태는 언제나 만원 상태가 된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생각을 하면 아찔해진다.

다른 측면에서 요즈음 한창 회자되고 있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슬로건과 이 문제를 연결시켜 보자. 장애인들에게 ‘최고의 복지’라는 일자리가 있다면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일터로 갈 수 있는 상황인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가?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가? 저상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가? 일자리를 갖기 위한 전 단계인 학교를 다니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모든 장애인들의 삶이 무조건적으로 비장애인들의 생활 패턴, 직장인들 혹은 다수의 생활패턴과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는 당연히 없다. 하지만 직장인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싶다거나 교육을 받으러 학교에 다니고 싶은 장애인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수와 일과의 흐름을 같이 하는 ‘노동’을 하지 않고 살 경우, 생각보다 훨씬 삶이 고단해질 가능성이 높은 현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채 이것 모두를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는 장애인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 아니면 ‘비장애인들도 그냥 다 그렇게 사는데 뭘…….’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이동권은 인간의 권리

그러나 나는 이 다음에 대해서는 사실 어렵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요즘 거리에서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을 과거 보다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과거보다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들을 출퇴근 시간보다는 낮에 더 많이 볼 수 있다면 그 또한 나는 별로 반갑지 않다. 몇 년 후에 서울과 경기도 권역에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건설할 것을 계획 중이라는데, 이것이 건설되면 장애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이 이동해야 하는 거리도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동권 투쟁이 2001년 즈음에 시작 되었으니 이제 10년 정도 지났다. 밝혔듯이 나에게 이동권 투쟁은 충격이자 새로움이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그것은 곧 나의 문제로 다가왔고, 나는 이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로 나온 지금 나는 이동권이 더 이상 지체장애인들만의 문제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저상버스와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그 다음은 무엇인가? 거대한 괴물 도시 속에서 일터든, 학교든, 어디로든 고단하게 몸을 움직이며 거리를 지나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이동권은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 거대 괴물 도시 해체를 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나와 당신의 거리는 어디까지 가까워질 수 있을지?
덧붙임

세주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