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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새만금 소송 패배가 남긴 희망

새만금 간척사업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는지, 어떤 내용의 사업인지, 무엇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새만금'이라는 신조어를 알지 못하는 한국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찬성과 반대 양측의 주장이 다양한 형태의 운동으로 언론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던 '새만금 갯벌의 뭇 생명과 평화를 위한 삼보일배'는 이제 새로운 형태의 시위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잊을 만하면 언급되는 새만금 소송이 우리에게 새만금을 잊지 못할 단어로 아로새겼으리라. 새만금 소송은 그 동안 원고와 피고 모두에게 희비가 엇갈리는 쌍곡선을 그려왔다.

새만금 소송은 2001년 8월 21일 사법부의 문을 두드린 이래 4년 4개월의 긴 시간동안 진행돼 왔다. 이 소송은 새만금 간척사업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제기함으로써 새만금 반대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새만금 소송의 경과를 잠시 되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주된 논지는 새만금 간척사업의 '사업시행인가처분 무효 확인(이하 본안 소송)'이다. 주민, 환경단체 등 원고들은 만약 이 소송에서 원고들이 승소하더라도 방조제가 완공되면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공사 중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였고, 2003년 7월 1심 재판부는 이를 수용하여 공사가 일시적으로 중단된 바 있다. 본안 소송과 별개로 제기된 이 신청은 2004년 1월 말 2심 재판부에 의해 번복되어 공사가 재개되었고, 원고 측은 상고(3심)를 취하하여 현재까지 방조제 공사는 계속되어 왔다.

새만금 소송은 새만금 간척사업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이의가 제기된 것으로써, 판단을 맡은 재판부는 판결이 가져올 깊이를 알 수 없는 사회적 파장까지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본안소송 1심 재판부는 2005년 1월 말 원고와 피고 양측에게 상호 간의 대화를 통해 합의의 접점을 찾을 것을 권하는 조정권고안을 제시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안이 단순히 '개발 대 환경보전'의 갈등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상황들로 뒤엉킨 정치·사회적 문제였으며, 양자 간의 대화와 합의를 통하지 않고는 갈등의 골을 메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랜 숙고 속의 이러한 권고는 피고(농림부 등) 측의 거부로 무산되고, 지난 2월 1심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담수호 수질대책, 경제성 등에 대한 문제점을 들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원고와 피고가 각각 항소하여 새만금 소송은 고등법원의 2심이 진행되는 지루한 일정에 들어섰다. 지난달 초 담당 재판부가 인사이동으로 바뀐 후 최종 변론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1일 2심 판결이 내려졌다.

2심 재판부는 새만금 사업의 주된 목적이 변경되지 않았고, 담수호 수질이나 경제적 타당성 등의 객관적인 하자가 명백하지 않기 때문에 무효확인청구가 이유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판결을 지켜보기 위해 법원을 찾았던 새만금 지역 어민, 종교·사회단체 등은 분노를 넘은 허탈감을 표시했으며, 판결 직후 새만금 지역 어민들은 과천 농림부 청사를 찾아 항의문서 전달과 함께 항의 집회를 열었다. 그 동안 참고 참았던 어민들의 울분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돌아가는 차안에서 새삼 결의를 다지며,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어민의 목소리를 낼 것을 다짐했다.

새만금 소송은 실질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차원에서 제기되었으며, 2003년 삼보일배 이후 특별한 활동을 펼치지 않았던 새만금 반대운동 진영의 거의 유일한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03년 7월 '공사 중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가시적으로 '공사 중지'라는 성과를 쟁취함으로써, 새만금 간척사업의 중단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2심에서 승소하였을 경우, 다시 한 번 '집행 정지'를 통해 공사를 중단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원고와 피고 간에 참된 토론의 장을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2심의 패배로 그런 기회를 놓쳤지만, 또 다른 분명한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바로 주민이다. 그 동안 현실적인 제약에 발 묶여 있던 주민들이 '마지막에 왔다'는 절박함에 거칠 것 없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이제 이들 2천여 명의 새만금 연안 주민들은 전라북도 2만여 도민을 향해, 4천만 대한민국을 향해 외칠 것이다. 이 땅의 한 주인으로, 그러나 국가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로, 국책사업에 떠밀리는 유목민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스스로의 목소리로 할 것이다.

이제 새만금 소송은 상고심인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길고 긴 일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신문지상에서 '새만금'이라는 신조어를 마주할 때는 법원에서의 이야기가 아닌, 지역의 지역에 의한 지역으로부터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폭폭한 시대, 여전히 사람만이 희망인 까닭이다.
덧붙임

이승민 님은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원으로 '지속가능한 새만금(FASS)'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