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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운동을 키우는 새로운 실험> ⑦ 3.8 여성 무지개 시위 2004

차별과 싸우는 다름으로 닮은 여성들


다름으로닮은여성연대(아래 다닮연대)는 장애여성공감, 전쟁을반대하는여성연대 WOW, 그리고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가 2003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결성한 비주류 여성 단체간 연대체다. 이 단체들은 2002년부터 한국여성단체연합 중심의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와 별도로 행사를 꾸려오다가 2003년 무지개 시위를 기점으로 상설 연대체를 구성했다. 즉, 다닮연대는 기존 여성운동의 이성애·비장애 중심적 관행과 의제 선정 등을 비판하면서 다양한 여성들 간의 수평적 교감과 연대를 꿈꾸며 태동했다.

다닮연대는 사안별 연대를 지양하고 일상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활동들을 만들어 내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나온 것이 바로 세계 여성의 날 기념 무지개 시위 'WOW! 또 다른 세상을 공감하기, 3.8 여성무지개시위 2004'(아래 무지개 시위)였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가족에 대해 다르게 말하기, 대안적 상상력: 무지개포럼'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고, 'WOW! 또 다른 세상을 공감하기, 3.8 여성무지개시위 2004'를 열었다. 이 두 가지 행사는 2003년의 행사와 다닮연대의 결성 이후 일년간의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만들어진 자리였다. 세 단체가 차례대로 주관하는 세미나를 2003년 한 해 동안 꾸준히 진행했고, 이를 통해 무지개 시위의 기조를 잡아나갔다. 장애인이라고만 할 수도 없고 그저 여성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삶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장애여성의 문제를 함께 고민했다. 또한 동성애자라고만 하기에도 부족하고 역시 그저 여성이라고만 하기에도 부족한 삶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레즈비언의 문제를 같이 나누었으며, '국민'의 이름에 갇히지 않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의 조건들을 공유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다닮연대는 일상 속에 깊숙하게 침투해 있는 여러 가지 차별의 문제를 짚어볼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지속적인 만남를 통해 우리는 여성으로서 받는 이 사회의 억압과 차별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고, 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너무나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기에 저마다 달리 느낄 수밖에 없는 가부장제의 다층적인 억압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었다. 서로서로 기울이는 끈질긴 노력을 통해 '여성'이라는 뭉뚱그려진 이름이 가려버리는 다양한 현실들을 좀 더 예리하게 들여다보는 기회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2004년 무지개 시위의 실무 준비 과정과 당일 행사 현장 등에서 아주 구체적인 성과들로 드러났다. 끼리끼리 활동가들이 자신의 아웃팅을 덜 두려워하며 다른 단체 자원활동가들과 관계 맺을 수 있었던 것,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들이 행사 준비 과정에서 덜 불편한 공간을 이용하여 회의하고 연습할 수 있었던 것, 다닮연대의 모든 활동가들이 억지로 감수해야 할 불편함 없이 거리 행사를 끝까지 진행할 수 있었던 것. 이 모든 것은 행사에 임박해서 했던 준비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강하게 쥐고 온 고민의 실마리들에 의해 가능할 수 있었다. 기획단과 자활단을 통틀어 어떤 위계서열도 존재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단 한 사람의 끼리끼리 활동가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웃팅 당하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살피고, 이동의 문제를 고려하여 행사장을 고르고 무대를 설치하고 행사 진행 순서를 짜는 일들은 모두, 일상적인 노력 없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종류의 실천들이었다. 이러한 성과들은 무지개 시위 당시 배포했던 '연대의 기본'과 관련된 '매뉴얼'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또 하나의 성과는 무지개 시위를 통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내는 숱한 차별의 문제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발언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 내부의 억압의 문제, 부모와 아이들로 구성된 가정만이 '정상 가족'이라는 편견 속에서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박탈해 온 사회의 문제 등에 대해 발언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활동가들 스스로가 먼저 서로의 차이에 대해 공감하고자했던 그 노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스스로가 속해 있는 운동의 영역으로부터 고민을 풀어나가는 것, 그것은 대사회적 발언의 실질적인 영향력 역시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일상의 실천인 것이다. [케이]

◎ 케이 씨는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의 활동가입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