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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은 어떻게 '소비'되는가

지은이: 수전 손택/ 옮긴이: 이재원/ 펴낸곳: 이후/ 253쪽/ 2004년 1월


최근 이라크 포로 학대 사진과 미국인 참수 동영상이 무분별하게 게재되고 퍼져나가고 있다. 피해자의 인권과 '이미지 너머의 진실'에 대한 성찰 없이 잔혹한 사진과 동영상을 '소비'하는 태도는 그것이 아무리 미국의 패권주의를 증명하고 반전여론을 고취시키는 데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수전 손택의 이 책은 이와 같이 타인의 고통을 한낱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리는 태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저자는 어떤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되는지, 어떤 사진을 공개해서는 안 되는지, 혹은 공개하되 어떠한 제한 요건 하에서 공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사진 속 이미지들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가장 명확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믿어지는 사진이 말해주지 않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파헤친다.

잔혹한 사진들이 가져다 준 충격은 전쟁에 대한 거부감만을 자극할까? 저자는 반대로 그러한 사진들이 호전성을 부추기는 선전도구로 이용될 수도 있으며, '인간의 야만성' 자체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초점을 전쟁의 원인과 정치로부터 인간성의 문제로 옮겨버릴 수도 있다고 꼬집는다. 또한 사진 속 고통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연민은 무력감('이런 끔찍한 현실을 바꿀 수나 있는 걸까')과 함께 무고함('난 저런 일에 동참하지 않았어')까지 증명해주기에 피해자의 고통에 진지하게 개입하기보다 '타인'의 고통으로만 인식하게 만든다. 오히려 저자는 묻는다. 이러한 사진을 싣고 퍼나르는 행위가 단지 고통받는 육체를 보려는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하고.

또 다른 문제는 사진에 담긴 제국주의적 시선이다. 대개 백인 피해자의 얼굴은 쉽게 공개되고 구경거리로 전시되는 일이 없는 반면, 피해자의 얼굴이 익명으로 선명하게 공개되고 두고두고 전시되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힘없는 사람들이다. 미군에 의해 성적 학대를 당하는 이라크 여성의 얼굴과 백인들 앞에 발가벗긴 채 공포에 떠는 이라크 남성의 얼굴이 그대로 공개될 수 있었던 것은 특정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오랜 관행의 연속인 셈이다.

저자는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고 연민만을 베푸는 태도를 넘어 고통을 안전하게 쳐다보는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지 숙고할 것을 제안한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이미지가 아니라 실체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