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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2개의 전쟁, 뉴올리언스와 이라크의 참상

지난달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친 뉴올리언스는 미국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백인들이 이미 오래 전에 도시의 고지대에 정착한 반면 비싼 집세를 감당할 수 없는 흑인들은 홍수에 취약한 뉴올리언스의 저지대에 대규모 빈민층을 형성했다. 무너진 제방에서 쏟아진 물은 이들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약 28%로 추산된다는 뉴올리언스의 빈곤층 중 흑인의 비중은 무려 84%에 이른다. 백인들은 대부분 대피했으나 자동차도 돈도 갈 곳도 없었던 빈민층 흑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한 것이다. 생필품을 구하려는 '검은' 이재민들의 몸부림은 '약탈'로 규정돼 사살권을 부여받은 경찰의 과녁이 되었다.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사망자는 아직 시신마저 수습되지 못했고 임시수용소 슈퍼돔으로 피신했던 2만여 명은 시신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이재민 100만 명이 생필품과 피난처를 찾아 이웃 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트리나는 자연재해였지만 미리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재였으며, 멕시코만에서 9천 킬로미터 떨어진 또 다른 걸프 지역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비극의 또다른 결과였다. 지난 2001년부터 미 육군 공병단이 이번에 무너진 호수쪽 제방을 막기 위해 모두 9900만 달러를 연방정부에 요청했지만 약 4분의 1인 2200만 달러만 승인받았다. 그러고도 부시 정권은 이라크에 매달 56억 달러를 쏟아 부었으며 인명구호에 투입되어야 할 주방위군과 수송장비는 이라크에 가 있었다.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뉴올리언스의 극빈층들에게 때 맞춰 구호물자를 제공하지 않았다. 뉴올리언스와 이라크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시라는 이름의 또다른 카트리나를 피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카트리나와 부시가 눈에 드러난 승자라면 또다른 승자는 사람들의 이목 뒤에 숨어 더 많은 이득을 누리고 있다. 이라크 복구사업에서 비용 과다청구로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핼리버튼사는 카트리나로 피해를 입은 미시시피와 뉴올리언스의 해군기지 수리계약을 따내면서 주가가 52주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핼리버튼사의 최고경영자였던 딕 체니 부통령은 2007년부터 행사할 수 있는 이 회사의 스톡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유가는 급등하고 있으나 오히려 에너지 기업들의 수익성이 대폭 호전된다는 소식에 에너지주의 주가는 강세를 나타냈다. 복구자금으로 돈을 수장시키느니 차라리 다른 곳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자는 제안까지 나와 건설업과 부동산업계는 장미빛 희망에 휩싸였다.

반면 뉴올리언스와 이라크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 2개의 전쟁에서 가장 참혹한 패자이다. 허리까지 물이 찬 암흑의 도시에서 죽음의 위기에 휩싸인 뉴올리언스 주민들은 자신들의 대통령이 일으킨 전쟁으로 폐허가 된 바그다드를 몸소 체험해야 했다. 하지만 폐허 속에서 희망 또한 싹트고 있다. 진실을 깨달은 미국민들이 부시의 퇴진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이라크 전쟁이 실수라고 응답한 미국민이 절반을 넘었다. 부시의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수준인 30%대로 추락했다. 뉴올리언스의 피해액이 미국이 치른 지난 2개의 전쟁, 아프간·이라크 전쟁의 전비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와 미국 내 철군 여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뉴올리언스를 통해 참상을 몸으로 깨달은 이 평범한 사람들이 진실을 향해 주저 없이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