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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개인적 체험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사는 게 자연스럽지 못하고 편안하지 못한 지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왜 여성들하고 얘기할 때와 남성들하고 어울리는 것이 느낌이 다른지. 나이 들어갈수록 이성보다는 동성이 좋고 편해지는지. 그것은 이 땅의 보통 남성들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남성들에게 여성은 언제나 '성적인 대상'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 성적 대상이 아니면 그저 어머니나 누이나 할머니나 딸이 있을 뿐. 나같이 이혼하거나 독신인 여성에게 가해져 오는 음험한 눈길들을 나는 늘 느끼면서도 못 느낀 척 해왔던 것이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어떤 남성이 성적인 농담을 스스럼없이 건넨 적도 있었다. 나는 그때 왜 단호하게 반박하거나 대꾸하지 못하고 얼굴이 벌개져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탔던 것인지 모르겠다. 남성으로부터의 성적농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그 여성의 좋은 인간성 중의 하나로 치부되기도 하는 분위기를 나는 용인했다. 그래서 분위기 깨지 않으려고 아주 많이 인내하면서 어떤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후 그런 자리가 있을 때는 다시는 나가지 않게 되었고 자연 사회생활이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빈약한 사회생활이란 게 그러니까 그토록이나 가학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음을 나는 이제사 깨달았다고 해야할까. 뭔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불편하고 아프고,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이번에 나보다 젊은 여성들로부터 '용기' 있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그동안 사실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해왔던 나 자신의 용기 없음을 통탄스러워 하면서. 나 어려서는 아들 없는 집의 서러움을 톡톡히 받았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어느 집에 아들이 없는 것을 '후사'가 없다고 했다. 후사 없는 집 사람들은 은근히 동네사람들한테 무시를 당했다. 너도나도 무시를 하니 동네에서는 후사없는 집 사람들은 그렇게 대접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우리 집이 바로 후사 없는 집이었다. 그리고 후사 없는 집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은 후환이 없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대를 이을 아들이 없으니 이제 그 집의 명운은 다했다'라는 그토록 단순하고, 그토록 야만적이며 그토록 반인권적인 인식이 있을까. 그런 야만적이고 반인권적인 분위기에 내가 너무 익숙했던 탓일까. 나는 왜 그토록 삶이 불편했으면서도 한번도 그 불편함의 정체를 직시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 땅에서 여성으로 태어나고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특히 여성이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정글을 기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일찌기 홀로 되신 우리 고모할머니는 여자가 홀로 살아가기 힘든 땅에서 살려다 보니 '호랑이할머니'가 되었던 것일까. 여성이 그렇게 발톱, 손톱 드러내지 않고 홀로 살아가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땅이 이 땅이기 때문에.

공선옥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