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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한 양심수의 겨울편지> “겨울을 봄의 희망으로 이겨냅니다”


겨울은 어느 새 생활 속으로 들어 왔네요. 옛사람은 ‘견병수지동 지천하지한’(見甁水之凍, 知天下之寒)이라고 했지만 우린 얼어 있는 병 속의 물을 퉁해서가 아니라 움츠려드는 어깨, 성에낀 창문, 두툼한 솜이불이 생활이 될 때 ‘우리들의 겨울’임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운동장 한 켠에 만들어 놓은 텃밭에 잔반(殘飯; 먹고 남은 밥)을 거름으로 묻는 중인데 삽같은 연장도 없이 플라스틱 밥주걱으로 하다 보니 짠밥 구덩이에 흙 덮는 일도 땅이 얼면 힘들게 됩니다. 얼마나 살려고 밭에다 그렇게 거름을 하느냐는 농담을 들어가면서도 내년에 텃밭에 심어먹을 상추, 쑥갓, 케일, 깻잎 따위를 생각하며 짠밥을 묻는데 벌써 땅파기가 어려운 걸 보면 겨울은 진즉 왔나 봅니다. 이미 생활이 되어 버린 겨울을 봄의 희망으로 이겨냅니다. (중략) 봄을 기다리는 희망만이 아니라 겨울 그것이 봄을 잉태하고 만드는 과정이라는 깨달음으로 ‘곱징역’ 겨울나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는지요.

보내준 편지 잘 받았습니다. (중략) 옛날엔 ‘자유주의’ 따위엔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는데 어느 새 실천적 휴머니스트 비슷하게 되어 버린 자신을 보고 어떨 땐 놀라기도 합니다만 세월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일테지요. 그런데 이 ‘변화’엔 좀 우스운 얘기가 숨어 있습니다. 헌법소원 등의 합법투쟁을 이용한 ‘양심 지키기’라는 싸움을 할 땐 ‘그들의 논리로 그들의 모순을 드러내고자’ 양심과 사상의 자유니 관용이니 인권이니를 들먹였을 뿐이었지요. 타방(他方; 상대편)을 더욱 효과적으로 공격하려니까 자유나 인권에 대해 이것저것 뒤적이고 인류보편적 가치로서 인권을 입에 올렸는데 언어가 갖고 있는 주술적인 힘이 작용한 탓이었는지 몰라도 어느 새 그 개념,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 안고 있지 뭡니까. 바로 이 변화의 지점에서 내 감옥살이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됩니다. ‘양심지키기’라는 필부(匹夫)의 반항이 수호하려는 가치가 ‘개인적 가치’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한 ‘만인 공통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해 개인을 일으켜 세우는’ 것임을 실감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중략)

이처럼 반항은 처음엔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어쩔 도리 없는 저항이었던 것이 더 나아가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실천하고 그것을 다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선언하게 된다고 까뮈가 말했듯이 나 또한 전향거부라는 반대, 소극적인 데서 양심의 자유라는 인류보편적 가치의 실현, 적극적 의미로 발전하게 됩니다. 반항하는 개인은 자신이 의미부여했던 것이 공동선과 닿아 있고 자신의 행동은 만인과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중략) 존재하기 위하여 인간은 반항해야 하고 그 반항이 연대성 위에 자리잡을 때, 우리는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 함께 존재하게 된다고 합니다.


안동에서 용주가

* 이글은 정태인 씨가 컴퓨터 통신에 올린 강용주(35․12년째 복역중) 씨의 답신에서 일부를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