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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현장스케치> '삭발식' 끝에 터져 버린 5.18 유가족의 눈물


28일 오후 한여름의 땡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장충단 공원의 단상에서 아홉명의 5.18 단체회원들이 삭발을 하고 있다. 삭발에 참가한 이들은 오월단체 회원들로 세 사람을 빼고는 모두 환갑이 넘은 노인들이었다. 올해 나이 73세인 박영만 씨를 비롯해 아주머니도 4명이나 되었다. 이들의 모습을 3천여명이 일어선 채로 지켜보았다.

그들의 머리가 바리캉으로 밀려 파르스름한 맨머리가 드러날 때 집회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의 눈자위가 붉어졌다.

함께 농성하던 5월단체의 젊은 사람들은 60이 넘은 이들의 삭발을 강력히 만류했다.

하지만, "자식이 죽었는디, 머리 깎는 게 뭐가 무서워. 우리가 할 것이여", 이 말에는 누구도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었다. 머리를 깎는 동안 아주머니들은 수시로 수건을 눈가로 가져갔다. 남자들은 묵묵히 땅을 내려다 봤다.

"광주학살자를 비호하는 김영삼 정권 퇴진하라"

그들의 선창에 뒤따라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도 숙연했다.

5.18유족회 송영도 씨(여)는 "광주에서 우리 자식들이 어떻게 죽었는데, 법정에 세워보지도 않고 이대로 끝내자는 겁니까?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울 겁니다."

호기 있는 다짐과 함께 단상을 내려왔지만, 내려오자마자 같이 농성하던 회원들과 부둥켜 안고 참았던 울음을 토해냈다.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돼. 이렇게는 못 살아."

그러나, 울음도 잠시, 눈물을 훔친 그들은 대열을 찾아갔다.

"저런 아픔을 당한 희생자들의 원한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이대로 묻어두고 넘어가자니 이 정권도 틀려 먹었어."

산전수전 다 겪었을 어느 노인의 한마디는 소리 높은 구호보다도 호소력이 있었다.

곧 이어 행진 대열이 갖춰졌다. 대열 앞에는 막 머리를 깎은 파르스름한 머리가 햇빛을 받아 분노처럼 파랗게 빛났다. 집회장 입구에는 분수의 물줄기를 배경으로 80년 당시 5.18 학살만행을 증언하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그 날을 증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