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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강제철거 앞장선 성북구청

대통령은 “강제철거 않겠다” 약속


한 자치단체가 집 없는 세입자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데 앞장서 비난을 사고 있다.

서울 성북구청(구청장 진영호)은 지난달 정릉4지구 재개발지역에 공문을 보내 “주민들이 11월 2일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을 경우, 행정대집행법에 의거 강제철거를 집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청은 “자진철거가 이뤄지지 않아 재개발사업 추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고, 공사지연으로 조합원에게 많은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라며 강제철거가 부득이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 세입자들은 “동절기 강제철거는 집없는 서민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인권유린 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또 구청측이 재개발사업추진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진철거를 종용하고 있지만, 시공회사인 우성건설은 법정관리와 자금난 등으로 사실상 공사를 중단한 실정이어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특히 “조합이나 시공회사도 아닌 관할 관청에서 주민 몰아내기에 앞장서고 있다”며 분노를 표했다. 이권이 걸려 있는 조합이나 건설회사와는 달리 서민들을 보호해야 할 관청에서 더 적극적으로 강제철거 운운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신동호 주거연합 조직국장은 “성북구청이 재개발사업에 적극 나서는 목적은 주민들을 물갈이하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노원·강북구 등에 이어 성북구에서마저 가난한 사람들을 내모는 일이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북구는 현재 또는 앞으로 모두 46개 구역에서 재개발을 시행하게 되는데, 재개발에 따른 주민교체는 최소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신 국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겐 나름의 공동체가 있고, 서로 일자리를 나누는 문화가 있다”며 “일방적인 재개발은 서민공동체를 모두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같은 주민들의 반발에 대해 성북구청측은 ‘임대아파트 알선’을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월세와 관리비, 융자금 이자 등을 따지면 월평균 25만원씩을 지출해야 한다”며 “이는 재개발지역 서민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미아6동 세입자대책위 위원장 임덕균 씨는 “IMF로 인해 건설경기 부양도 필요하지만 지금상황에서 재개발을 계속하면 결국 서민들은 모두 노숙자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데 대해 성북구청 담당 공무원은 “자진철거를 요구한 것은 동절기를 맞아 주민들의 안전을 염려해서였다”고 해명하며 “다음주 금요일경 사업시행자와 대책을 회의한 뒤, 강제철거 여부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청이 방침을 바꾸지 않을 경우, 한 차례의 행정대집행 계고장(기한 20일)이 주민들에게 발송된 뒤 강제철거가 진행된다.

현재 정릉4동 주민 20세대가 연말연시 동안 거리로 내몰릴 수도 있는 것이다. 정릉4동은 3년전부터 재개발공사가 진행되어 왔으나, 올 4월 한달 동안 용역직원들이 상주하며 행패를 부린 것 외에는 별다른 마찰이 없었던 지역이다.

한편, 지난 7일 김대중 대통령은 김수환 추기경을 만난 자리에서 “재임기간 동안 강제철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통령은 또 배석한 비서에게 “이 약속을 각 구청장에게 알릴 것”을 지시하며, 철거 관련 사안이 발생할 경우, 복지담당 비서와 협의하도록 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