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여름의 끝에 올해도 어김없이 기후정의행진이 열렸습니다. 예년에 비해 조금 더 정세적인 행진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온 세상이 AI 반도체 산업의 호황에 들뜬 분위기인데,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전면적으로 비판하며 대중투쟁을 열어내자는 제안을 했기 때문이지요. 사회 전반에 감도는 장밋빛 청사진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니 일정한 사회적 비난이나 지탄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9월 행진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점을 제기하는 장소가 되길 바랐습니다.
정부가 공언하는 대로라면 3대 메가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성장동력입니다. 반도체와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라는 세 가지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입니다.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고 있기에 ‘메가’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정부는 대기업의 이러한 투자에 화답하듯, 전력, 용수, 토지 등 사회가 함께 생산하고 나눠 써야 할 각종 자원을 산업 인프라 구축에 총동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정부와 자본이 한 몸이 된 것처럼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 이 산업의 성패가 한국 사회 전체의 미래를 좌우할 것만 같은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행진은 바로 이러한 현실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문제는 이 메가프로젝트가 우리의 삶과 노동, 지역을 어떻게 바꾸고, 그 과정에서 기후위기와 불평등, 공공성의 문제가 어떻게 심화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AI와 반도체 산업의 막대한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신규 핵발전소와 초고압 송전망, 대규모 발전시설과 각종 인프라 건설이 추진되고, 엄청난 양의 물과 에너지 그리고 토지가 동원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생태적 비용은 지역과 주민들에게 전가되는 문제는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 특별법은 기간제·파견노동과 장시간 노동의 확대 등 노동권을 후퇴시킬 우려가 있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어렵사리 쌓아 올린 규범과 권리의 목록들이 이른바 ‘AI 예외주의’ 앞에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올해 9월 기후정의행진의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9월 기후정의행진은 요구했습니다. 기후를 파괴하고 온실가스를 늘리는 메가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이루자고. 재벌을 위한 총력지원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공성 강화를, 농지와 용수를 빼앗는 메가프로젝트가 아니라 생태·친환경농업을 확대해 모두의 먹거리 기본권을, 그리고 전쟁과 학살을 확대하는 군비경쟁에 쓰이는 사회적 자원을 기후위기 대응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쓰자고 요구했습니다.
올해 행진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 17개 지역에서 열렸습니다. 지역 행진이 강화되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국 단위의 집회라 할 만한 서울 집회의 규모도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늘었습니다. 네팔에서는 거대한 빙하가 무너져 내리며 기후위기에 책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한국에도 전례 없는 폭우가 쏟아졌고, 이번에는 통영에 사는 사람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기후위기는 심해지는데, 기후위기 대응의 자리에 3대 메가프로젝트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이 여름의 끝에 또다시 광장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추라고, 우리에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그것도 아주 많이 모였습니다.
이번 행진을 통해 3대 메가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 사회 전반에 형성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후를 파괴하고, 불평등을 강화하는 이 구체적인 폭주에 맞서는 사회적 논의가 이번 행진을 경유하며 그 첫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입니다. 9월 행진이 끝난 며칠 뒤 양대 노총과 전농을 비롯한 130개 운동단위가 참여하는 ‘메가특구법 저지 및 3대 메가프로젝트 규탄 공동행동’의 출범한 것 역시 9월 행진의 성과 위에 있습니다. 행진이 하루의 대중집회에 그치지 않고, 메가프로젝트에 맞서는 후속 투쟁의 조직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행진이 제기한 문제가 지속적인 기후정의 투쟁으로 이어지고, 그 문제에 맞서 싸울 주체와 연대가 확장되는 일이 또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올해 919 기후정의행진의 의미를 이렇게 새겨보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