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은 맑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 쾌청한 날이 있다면 집회하기 좋은 날! 올해 5월 1일이 그랬다. 세계노동절대회를 맞아 여러 단체들과 ‘평등으로 가는 노동절 참가단’(이하 ‘참가단’)으로 함께 집회에 참여했다. ‘가자! 평등으로’ 플래카드를 든 캐릭터 타투 스티커를 얼굴에 붙이고,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지만 때 되면 오는 신문 <평등으로>를 열심히 나눠주었다. 누군가는 노동절에 ‘웬 열심?’이라고 생각했을까?
노동절, 우리 모두의 날
노동절대회가 노동자만의 집회였던 적은 없다. 노동절의 정신이 노동자의 ‘권익’에 멈추지 않고 모두의 해방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노동절대회는 노동조합들의 집회처럼 보이기 쉽다. ‘참가단’은 지난 4월 사전모임에서 노동절대회에 참여하는 이유를 서로 나누며 노동절의 의미를 되새겼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신문에 담았다. 노동운동과 연대하는 의미를 넘어서 모두의 해방을 위한 공동의 전망을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저마다 다양한 의제를 중심으로 운동을 펼치는 사회단체들이 노동절에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민달팽이유니온의 “어제는 폭풍 야근, 눈 떠보니 전세사기. 노동자가 살 곳은 어디에?”라는 문구처럼 노동자의 삶이 ‘사업장’ 안에서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기에 주거, 교육, 인공지능 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또한, 노동자는 여성이거나 이주민이거나 성소수자거나 노인과 같은 여러 정체성으로 살아가면서 일의 세계에서 차별을 겪거나 일의 세계로부터 배제된다.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전쟁과 학살의 무기를 제공하거나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무엇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무언가 만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접받아야 하는가는 어느 하나의 운동이 떠안을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참가단’으로 함께 한 52개 단체는 모두의 과제를 자신의 과제로 기꺼이 삼으려는 의지를 모았다.


<평등으로> 신문 1면에는 6개의 묶음으로 정리한 ‘참가단’의 요구를 새겼다. “차별금지법 제정하고 민주주의를 일상으로!”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하자!” “공공성을 강화하고 안전하게 함께 살자!” “성평등 실현하고 차별 없는 세상으로!” “불평등은 이제 그만 기후정의 실현하자!” “전쟁학살 멈추고 민중에게 평화를!” 세계노동절대회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우리의 요구를 함께 외칠 수 있기를 바랐지만, 올해 노동절은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그리 만만하지 않음을 일깨우기도 했다.
되찾은 이름, 빼앗긴 이름
노동절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1886년 미국에서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왔다가 경찰에 살해되거나 사형을 당했던 헤이마켓 사건 이후, 1890년 제2인터내셔널이 5월 1일을 ‘메이데이’로 정하고 전 세계 노동자가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해 싸울 것을 결의했다. 한반도에서 처음 노동절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 것은 1923년이었다.
조선노동총연맹은 8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을 요구하는 동시에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 ‘무산계급의 해방’을 향한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해방 직후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1946년 개최한 세계노동절대회에 20만 명의 노동자가 모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들은 8시간 노동제와 친일파 청산을 요구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길을 열어갔다. 그러나 1948년 미군정의 탄압으로 전평이 해산되고 ‘노동절’의 운명은 기구해졌다.
1959년 이승만 정권은 노동절을 3월 10일로 바꿨다.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의 창립일이었다. 이들은 반공주의에 입각해 정권의 어용조직으로 역할하며 민주화 운동 진압을 돕기도 했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은 노동절의 이름을 ‘근로자의 날’로 바꿨다. ‘근로’하는 ‘산업역군’은 필요했지만 감히 해방을 꿈꾸는 노동자는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87년 민주화항쟁 이후 ‘노동절’로의 개정 요구가 높아지면서 1994년 김영삼 정부는 날짜를 되돌려놓았지만 이름은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올해, 2026년에 와서야 ‘노동절’이 되었다. ‘노동절’이 제자리를 찾는 데 7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노동절이 제 이름을 국가에 새기게 된 날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축제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노동절을 앞두고 화물연대 서광석 조합원이 파업 중 대체 차량에 치여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동절의 이름은 돌아왔을지 모르나 노동자의 이름을 얻지 못한 이들이 수많은 이유로 권리를 빼앗기는 현실과의 간극은 아득했다. 비단 노동의 권리만이 아니다.
다시, 함께 만들어갈 역사
정부는 먼 길을 돌아왔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절을 지켜왔다. 국가가 노동절의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채택한다고 해서 노동절의 정신을 새기는 일까지 국가의 몫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절이 노동절답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운동에 주어지는 숙제다. 그 숙제는 노동절이 하루의 기념식이 되지 않게 할 운동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5월 13일, 김태연 활동가가 쓰고 노동자역사 한내가 출판한 <한국노동운동사> 책담회가 열렸다. 전노협이 해산하면서 결의했던 운동사 발간이 30년이 지나고 이루어졌다는 인사말이 묵직했다.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덕분에 책을 일부나마 읽고(3권짜리 벽돌 책이라 다 읽을 수 없었다는 변명을 끼워 넣고) 저자와 다른 이야기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숙제는 조금 더 어려워졌고 조금 더 쉬워졌다. 조금 더 어려워진 이유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곤경이 몇 가지 오류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한 시대를 마감하며 마주하게 된 도전이라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조금 더 쉬워졌다면,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함께 길을 내기 위해 여러 운동이 어떻게 만나왔는지를 살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노동운동이 품은 전망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때로는 임금투쟁으로, 때로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으로, 때로는 진보정당을 만들고 때로는 세월호 참사에 연대하면서 도전을 해왔다. 그건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노동운동’만의 역사가 아닌 공동의 역사였다. 저자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노동자계급의 투쟁 중심은 현장이었다”라고 말할 때, 그 현장을 우리가 얼마나 더 너르게 상상할 수 있는지에 따라 새롭게 써나갈 역사가 달라지지 않을까.
숨은그림을 찾자
‘평등사회 앞당기는 전노협’,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 때까지 전진하자며 창립한 민주노총이 지금껏 만들어왔고, 앞으로 만들어갈 노동절은 ‘평등으로 가는 노동절 참가단’이 만들고 싶은 미래와 이미 만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날 나눠준 신문 <평등으로>에서 인기를 끌었던 코너는 숨은그림찾기였다. 노동의 존엄과 모두의 해방이라는 숨은그림을 함께 찾아가는 시간이 분명 이어질 것이다.
해방과 존엄의 ‘숨은그림’을 함께 찾으러, <평등으로> 보러 가기
☞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평등으로 가는 노동절 참가단
<평등으로> - 2026 세계노동절 특집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