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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변희수 님의 복직, 남은 과제

“변희수에 대한 전역처분을 취소한다.” 6개월을 이어온 공판 끝에 2021년 10월 7일 대전지방법원이 내린 판결입니다. 성확정수술을 이유로 한 강제전역 처분이 부당한 차별이었다는, 당연하고도 너무 뒤늦은 결정이었습니다. 판결을 받아 든 심정이 마냥 반갑거나 가볍지 않은 것은 소송의 당사자인 변희수 님이 더 이상 우리 곁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우리가 승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든 지금, 변희수 님이 시작해 우리가 이어가고 있는 이 싸움을 돌아보며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게 됩니다.

싸움의 궤적

2020년 1월 22일 변희수 님이 공개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이 날은 육군 본부가 ‘고의적 성기 훼손’이라는 사유로 변희수 님에게 전역 처분을 내린 날이었습니다. 변희수 님은 이미 복무하던 부대 동료와 상관에게 커밍아웃을 마쳤으며, 성확정수술 과정에서 상관과 동료들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육군 본부는 강제 전역 처분을 강행했습니다. 변희수 님은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친화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군에서, 저를 포함해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그 훌륭한 선례로 남고 싶습니다. 저는 비록 미약한 한 개인이겠으나, 힘을 보태어 이 변화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바람을 밝혔습니다.

이후 2월 4일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변호인단’이 결성되었고, 2월에 제기한 육군본부 인사소청이 기각된 뒤 8월에는 전역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록 재판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으며, 해가 지나 2021년 2월이 되어서야 첫 변론 기일이 4월 15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사이 유엔에서는 성확정수술을 이유로 한 강제전역 처분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으니 시정을 요구한다는 서한을 한국 정부에 발송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강제 전역이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첫 공판이 시작되기 전인 3월 3일, 변희수 님의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 속에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단 하루 동안 진행되었던 장례식에 1,000여명의 동료 시민들의 조의를 표했고, 오프라인에서 진행된 추모 행동에는 700여명이 참여해 추모의 마음을 나눴습니다.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로 확대 재출범하며 변희수 님이 시작한 싸움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밝혔습니다.

부당한 강제 전역 처분을 내렸던 육군 본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뻔뻔한 모습만을 보였습니다. 변희수 님의 부고에 대해서는 “민간인의 죽음에 군의 입장은 없다”고 말했으며, 4월 15일 공판이 시작하기 전에는 “소송의 당사자가 사망했으니 소송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변희수 님의 유가족이 소송을 수계하고 공판이 시작된 뒤에도 공대위와 변호인단이 수십 장에 달하는 의견서를 제출할 동안 육군 본부는 단 한 장의 자료도 제출하지 않은 채 ‘성확정수술은 성기 훼손’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하며 변희수 님과 트랜스젠더에 대한 무지와 혐오를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심지어 변희수 님이 정신 질환을 겪고 있었기에 성확정수술과 무관하게 복무가 불가능했다며 고인을 모독하는 주장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육군 본부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습니다. 변희수 님의 복직 소송을 유가족이 수계하는 것은 적법하며, 성확정수술을 진행한 시점에서 변희수 님은 이미 여성이므로 ‘성기 훼손’이라는 남성 기준의 복무규칙을 적용한 강제전역 처분은 위법하니, 해당 처분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육군 본부는 끝까지 항소할 계획을 밝혔으나, 법무부가 항소 포기를 지휘함에 따라 더 이상의 재판은 이어지지 않을 예정입니다. 변희수 님에 대한 강제전역 처분이 위법했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확인되었고, 복직이 결정되었습니다.


‘승소’와 ‘승리’ 사이에서

공대위의 활동 목표는 그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변희수 님의 복직과 명예회복입니다. 소송을 통해 변희수 님의 복직이 결정되었지만, 공판 과정에서 끊임없이 강제전역 처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선고 이후에도 항소할 의지를 밝히던 육군 본부 및 상급 기관인 국방부의 사과와 변화 없이는 변희수 님의 명예가 회복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공대위에서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나누는 자리, 육군 본부와 국방부의 사과와 변화를 촉구해나가려 합니다.

활동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과제도 있습니다. 공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8월, 공대위는 변희수 님의 복직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지하철 광고 게시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는 ‘민원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광고 게시를 불승인했습니다. 명백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복직 소송에서 정의로운 판결을 구하는 내용의 광고를 ‘찬반’의 문제로 전락시키는 결정이었습니다. 이미 서울교통공사는 작년에도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광고를 같은 사유로 불승인한 바 있습니다. 공기관인 서울교통공사에서 차별과 혐오를 마치 의견이나 정당한 민원인 것처럼 승인하는 행태가 해를 넘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공대위에서는 게시되지 못한 광고에 대해 항의하며 광고 심의 기준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변희수의 이름으로 승리할 것이다.” 지난 3월 15일 진행했던 공대위 재출범 기자회견의 기자회견문 제목입니다. 변희수 님이 용감하게 시작한 싸움으로부터 만들어진 ‘승소’를, 차별 없는 군 조직과 사회로의 변화라는 ‘승리’로 이어나갈 몫은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남아있는 과제를 살피며 필요한 싸움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변희수 님의 복직을 온 마음으로 축하드리며, 고인의 평안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