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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구조자’가 아니라 ‘탈출자’잖아요

내가 2009년부터 오갔던 청소년센터의 한 친구가 지난주에 기타를 치면서 더 자두라는 가수의 ‘김밥’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센터장에게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노래나 부르고 있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밴드 활동을 하는 센터 아이들이 동네에서 추모공연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마침 다 되었다 싶어 나는 이번 달 이야기 주제로 세월호 사건을 정하고 청소년의 생각이 궁금해서 이들을 만났다.

 

슬퍼하는 마음에는 고정된 표현방식이 있지 않고 슬픔의 강도를 무게로 비교할 수도 없으며 저마다 애도의 얼굴이 다를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각자 일련의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들을 자유롭게 모두 적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서른 개 정도의 단어가 나왔다. 센터의 많은 친구들이 작년 제주도 강정마을 평화대행진에 가기 위해 세월호를 탔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과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비로소 반응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의아했다고도 했다. 또 어떤 친구는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에 화가 난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사람의 생명을 보험금으로 얘기하는 언론과 이 상황을 노려 자기이익을 챙기려는 정치인들의 ‘쇼’에 화가 난다고도 말했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가진 분노의 감정도 같은 내용이 아니었다.

 

어떤 청소년은 뉴스에서 구조자, 사망자, 실종자라고 말하지만 사실 구조자가 아니라 탈출자가 맞지 않냐고 공감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청소년들은 자신과 가족은 아니지만 너무나 많은 같은 또래 아이들이 죽어서 슬프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믿고 있다고 탈출하지 못한 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슬퍼했다. 우리는 사망자 중에 청소년들이 많았지만 죽음에 대한 기억에서 배제된 비청소년들의 존재에 대해 얘기 했다. 누구의 죽음이 더 얘기되고 기억되는가를 질문했다. 또한 역할을 맡은 개인의 책임이 있겠지만 그 개인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없고 그렇게 몰아가서도 안 된다는 얘기도 나누었다.

 

모임이 있고 며칠 후 센터 친구들이 추모공연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컬을 했던 친구가 노래 도중 울컥해서 갑자기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 머릿속이 하해지면서 침묵의 노래를 했고 공연이 끝난 후 속상해서 한참을 울었다는 얘길 들었다. 그리고 센터의 몇몇 친구들이 지난 주 토요일에 있었던 세월호 침몰 희생자 추모 청소년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청소년들을 다시 만나면 “정 모라는 사람이 니네들 일당 6만원 받고 동원된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럼 또 이들의 어떤 얘기들이 나를 일깨우고 무릎을 치게 할지 궁금하다. 아, 빨리 듣고 싶다.

 

어떤 친구는 자신들의 슬픔과 분노의 움직임을 돈 따위로 얘기하는 일부라고 믿고 싶은 어른들의 태도에 어이상실이라고 말할 것 같다.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건 어른들이고요. 우릴 뭘로 보고 헐~!”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들보고 생각 없고 개념 없다고 하는데 어른들 중에 생각 없고 개념 없는 사람 많네”라며 곤대질 하는 어른들을 비웃겠지.

 

뉴스를 보다가 분향소를 찾은 엄마가 함께 온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어른 되면 이 사회를 바꾸는 사람이 돼“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 왜 이 장면을 보면서 학교와 집에서 지금은 ‘가만히 있으라’고 청소년들에게 말하는 많은 어른들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걸까? 또 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에게 배후 세력이 있다는 둥, 애들이 뭘 알아서 저러겠냐는 등의 헛소리를 하며 모욕을 주는 어른들의 얘기가 겹쳐서 들릴까?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센터 친구들이 “끓었다 푹 꺼지는 냄비근성 같은 일 없이 잊지 말자”며 “슬픔을 같이 나누며”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 같이 애쓰자”고 말했다. 우리는 기다림과 헤어짐, 그리고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나중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 함께 슬픔과 분노를 말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이들이 스스로 사회구성원으로서 이 연루된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떤 한 친구가 인권교육을 할 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맞서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은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에겐 무력감의 역사적 경험이 아닌 “다 같이 애쓰고” 함께 싸우는 경험과 기억의 역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