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연차 인권활동가의 역량강화 교육 <인권/활동가의 신!세계>이 지난 8월 13일부터 9월 10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마다 열댓 명의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사랑방이 함께 하고 있는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에서 2년 만에 연 인권활동가 교육. 인권운동이 걸어온 길부터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길 찾기까지, 인권/활동가의 세계에서 필요한 ‘인권의 관점/언어/입장/동료’를 만들고 싶은 이들과 함께 한, 뜻깊은 5주간의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1회차 강의 제목은 <인권은 무엇을 하는가>였다. 강의를 맡은 인권연구소 창의 류은숙 활동가는 인권이 ‘무엇인지’를 말하기보다, 인권이 ‘무엇을 하는지’를 이야기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인권이 하는 12가지를 들려주었다: 인권은 섬세한 언어를 제공한다. 인권은 타자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인권은 연결된/연결될 자유를 지지한다. 인권은 굴욕으로부터 지키는 문터이자 더 나은 삶을 실현할 도약대가 되어준다. 인권은 수치스런 의존이 아니라 당연한 상호의존을 구체적으로 실현한다. 인권은 누가 약자인지 헤아리고 당연하게도 그편에 선다. 인권은 먹고 사는 것을 위해 타자에 대한 착취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자유, 그런 자유를 발휘할 수 있는 삶을 향해 간다. 인권은 연결된 삶 속에서 공통의 자유를 추구한다. 인권은 세계를 늘린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돌아와 세계를 다시 볼 힘을 키워준다. 인권은 부정적인 경험 위에서 반성의 방파제를 쌓아 올린다. 인권은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상상력의 근거가 되어준다. 인권은 끊임없이 새로운 규범과 실천을 만든다.
류 활동가는 ‘인권은 고통에 이름을 붙인다’고 말했다. 젠더, 계급, 인종 등 불평등한 권력구조와 역사가 몸과 마음에 상흔을 남긴다. 그로부터 지문처럼 묻어나는 이야기 속에 바로 인권의 언어가 있다. 내가 왜 사랑방에 들어오고 싶었는지를 다시 곱씹어 보게 되었다. 또 류 활동가는 인권의 언어를 통해, 우리가 반-인권의 문제를 알아차리고 대항할 수 있다고 하였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거나, 권리의 언어를 훔쳐서 멋대로 요리하거나, 자신들의 욕구를 권리로 둔갑하는 반-인권의 문제들에 대해서 말이다. 아직 내 입에 달라붙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내게도 인권의 언어로 세상을 알아차리고, 세상에 질문하고, 세상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 잘 스며들 수 있게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보았다.
류 활동가는 사랑방에 있던 시절, 자료실에 인권 자료들을 아카이빙 하며 여러 카테고리를 만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내 그는 지금에야 너무 당연하지만 그때 당시엔 빼먹고야 말았던 어떤 의제들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듯 이야기해주었던 순간. 그때 부끄러움을 통해 지금의 더 넓고 깊은 인권운동을 해나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류 활동가의 얼굴을 눈에 열심히 새겼다. 최근 전쟁과 해외파병에 관해 ‘인권으로 읽는 세상’을 쓰다가,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부끄러움을 잊은 정부와 자본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대항하는 언어를 다듬어가는 것만큼이나 내가 문득 잊어버렸던 어느 부끄러움을 잘 곱씹어 보는 것 또한 인권활동가가 되어가는 과정의 일부여야겠다. 내가 되고 싶은 건 ‘부끄럽지 않은 활동가’라기 보다는 ‘부끄러움을 묻어버리지 않는 활동가’인 것이라고 봐야지.
2회차 교육에서는 인권교육센터 들의 지나, 개굴 활동가가 <‘인권’이 인권을 배반하는 곤경 속에서, 인권의 문법 새로 쓰기>를 진행했다. ‘참교육(넷플릭스 드라마)’, ‘스타벅스와 배재고’, ‘순경 남녀통합선발제’와 같이 시의성있는 인권운동의 현안을 두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권에 관해 계속해서 논쟁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 그럼에도 다양한 자리에 위치한 동년배 활동가들과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다. 각자의 자리에서 보았던 장면, 직관적으로 가졌던 인상, 서로 다른 관점을 보태 더 크게 채워지는 인권의 언어들이 반가웠다. 이어지는 강의는 대항서사와 함께 대안서사까지 만들어 낼 인권운동에 대해 상상해볼 계기가 됐다. 반인권적인 것들에 대항하는 이야기들도, 나아가 대안적인 길을 열어내는 이야기들도 모두 인권운동에 있는 서로에게도 필요한 것이며 인권운동의 이름으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픈 것들이라는 생각에 크게 동의가 됐다.
3회차 교육에서는 지역, 노동, 팔레스타인이라는 키워드로 인권운동의 현장에 몸 담고 있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조별 미니 간담회를 가졌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체제전환전북네트워크의 채민 활동가와 ‘지역’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엄진령 활동가와 ‘노동’을, 팔레스타인평화연대/디지털정의네트워크의 뎡야핑 활동가와 ‘팔레스타인’을 키워드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우리의 관점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지역 모둠에서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대한 고민이 오갔다. 삶터이자 일터인 나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에서는 지역정의에 관한 네트워크 모임을 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그 중요성을 생각해보게 됐다. 노동 모둠의 한 활동가는 이주노동자 상담소에서 노동자로서의 상담만이 아닌 성정체성을 비롯한 다양한 대화가 쏟아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많은 차별이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것들을 바꾸기 위한 과정의 하나로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운동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팔레스타인 모둠에서는 제국주의는 확실히 망할 것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1초라도 더 빨리 망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우리들의 1초가 모여서 더 많은 사람들이 겪을 죽음과 고통을 막는다고 생각하면서 종종 밀려드는 무력감을 함께 덜어내보자는 이야기도 나눠주었다.
4회차 교육에서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공현 활동가가 <인권운동, 주장하고 알리는 글쓰기>를 진행하며 글쓰기에 관한 공부와 실습을 함께 했다. 활동하다보면 입장문을 쓰게 되는 때가 온다. 이건 학교에서 배우던 글쓰기와는 분명 다르다. 예전에 활동을 시작했을 때, 어느 활동가가 내 글은 일기 같다고 피드백을 준 적이 있었다. 그게 칭찬인 줄 알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은데, 적어도 입장문 쓸 때만큼은 그 버릇을 버렸다. 전세사기 대응을 하며 피해 세입자들 곁에서 함께 피 끓는 심정으로 활동하는 와중에 없어졌던 것 같다. 울면서 입장문을 쓰던 때다. 이 시절을 떠올려보면서, 저연차 활동가라고 하더라도 미리 나서서 미래에 쓸 입장문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했다. 물론 평소에 다른 이들의 입장문을 많이 읽고 뉴스나 책도 많이 읽어야 활동가의 글쓰기 실력도 자라고, 필요한 때에 더 잘 고민하며 서로에게 유의미한 입장문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권의 언어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한 감각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꾸준히 쌓아가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진심과 고민들이 잘 묻어나는 글을 짓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 2회차 교육 시작 전 다같이 둘러앉아 진행한 몸풀기 마음열기
5회차 교육에서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오 활동가와 함께 <지속가능한 우리의 활동을 위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저연차 활동가들이 아주 크게 공감할만한 사례 3가지를 두고 조별토론을 했다. ‘의사소통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가능씨’, ‘반복되는 실수로 위축되는 지속씨’, ‘활동의 역량을 키우고 싶은 인권씨’. 3명의 가상 인물에게 깊이 공감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타났다. 도파민이 솟았다. 마치 나 또는 내 동료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깊은 몰입감과 함께 어느 정도의 익명성을 만끽하며, 여러 이야기들이 활기차게 오갔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각자의 대응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도 했다. 막상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서는 또다시 답이 없는 문제처럼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조차도 이것을 문제라고 함께 얘기해주는 사람들이 여기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위로와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고도 느꼈다. 여러모로 앞으로 어딘가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 나눌 사람들이 있음을 서로 확인하며 마무리할 수 있었던 좋은 날이었다.
사랑방에 들어온 지 만 1년이 이제 막 지났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을 상임활동가 모두가 번갈아 쓰다 보니, 저연차 활동가도 자연스럽게 고연차 활동가들과 현안을 바라보는 사랑방의 관점에 대해 논의하면서 때로는 입장을 발전시키고 때로는 이견을 나누기도 한다. 활동가를 삶의 양식으로 택한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루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랑방 밖에서 이 과정을 여러 활동가들과 함께 하는 기회는 꽤 흔치 않다. 시급한 의제가 많거나 실무를 하기 바쁠 때도 있고. 물론 일 쳐내기를 함께 하면서 생기는 동료애도 있지만은, 약간 아쉽기는 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교육 회차마다 마련되어 있던 모둠토론 시간이 매번 반갑고 즐거웠다. 또 이런 기회가 생길 수 있다면 좋겠다.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에 충분한 더하기가 되는 시간이었길. 다시 만날 다음을 기약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