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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벌써, 고작, 이제야 앞으로!

 

2026년이 벌써 반이나 지나갔습니다. 저는 매년 새해에는 몇 십개의 자잘한 신년 목표를 꼭 세우고(올해는 총 62개의 목표를 만들었네요 – 2/3 이상은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상/하반기, 연말 결산은 물론, 하루 한 주 한 달을 지날 때마다 무엇을 했고 못 했는지 돌아보는 버릇이 있을만큼 시간에 많은 미련을 두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랑방 홈페이지에서 상임활동가로 로그인을 하면 가입한 지 얼마나 됐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자꾸만 그 기록에 눈이 가더라고요. 입방 후 수일 지나서 홈페이지 가입을 했으니 실제 활동 기간과는 다르겠지만 큰 차이는 없겠지요.

10개월 3일. 고작 1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지만 저에게는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 가장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기간이기도 해서 묘한 마음이 듭니다. 사랑방은 10년 가까이 혹은 훨씬 넘게도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이런 말을 쓰는 것이 괜히 민망하기도 한데요, 정말로 그렇습니다. 매번 기한이 정해진 채 살아왔던 지라 입방 초기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 저편에서 어느 기간 안에 무언가 ‘성실히’ 증명하고 해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왔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그 당연한 사실이 슬쩍 허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대단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최근에서야 사랑방이라는 공동체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갑자기 엄청나게 가까워진 기분입니다.

 

그동안 사랑방 활동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요. 온몸 다해 활동하는 사람들, 매순간 진심으로 분노하고 쉽게 마음을 내어주는, 그러나 동시에 담대하고 무거운 얼굴을 보면서 그 얼굴을 한 내 모습을 그리면서도 되레 찔리기도 했습니다. 입방 전 제게 “‘그런(아마 가벼운)’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라고 했던 지인의 말이 자꾸만 생각났거든요. ‘떠다니는 구름처럼 살자’를 삶의 모토로 삼아왔던 태도가 이들의 운동에 민폐가 되나 싶어 그 멋진 얼굴들 앞에서 작아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작은 채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쉽게 좌절 말고 천천히 시동을 걸어가는 과정으로 삼아보려 합니다.

어느 날은 사랑방 동료 활동가들 저녁을 먹으며 활동하면서 느끼는 부족한 부분들에 대한 고민을 나누게 되었는데요. 그러한 고민에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년을 활동하면서 갈고 닦은 나의 기술을 벌써 탐내면 어떻게 하냐”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걸 들으니 순간 웃음이 터졌습니다. 물론 활동을 오래 한다 해서 저절로 무언가 얻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왠지 나도 계속해서 갈고 닦으면 되는구나, 싶어 지금 하는 것을 열심히 하자는 동기도 생기고요. 며칠 전에는 다른 활동가와 대화를 하다가 “공부하고 돌아서면 새로 공부할 게 또 생긴다”는 농담조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십 년간 활동을 해온 이도 또 새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니, 격변의 세상에 봐야 할 것, 알아야할 것이 태산이라는 사실이 무서워야 할 텐데 어쩐지 반대편으로는 가슴이 뜁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지겹도록 반복되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직도 제게는 새롭습니다. ‘벌써’ 10개월이 아니라 ‘고작’ 10개월인 이유겠지요.

최근에는 이주 인권 관련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대구 성서공단에서 출입국 단속을 피하다 돌아가신 故뚜안 님의 추모제에 다녀온 이후, 낯설게 일렁이는 마음을 따라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더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람이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로 사랑방 운동과 이주 운동을 함께 엮으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울산에서는 이주노동자 당사자들이 HD현대중공업의 ‘나쁜’ 계약에 저항하는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관련하여 7월 5일, 울산 이주노동자 공동대회에 연대하러 갔다가 오히려 엄청난 에너지를 받고 왔습니다. 삶의 조건이 자본에 달려있는 상황에서도 “‘미등록’이 되더라도 더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일어난 이들의 목소리가 울산 도로 한복판에 퍼지는데, 땅이 울리는 듯한 느낌까지 들더라고요. 뜨거운 목소리를 따라 외치며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될 장면이 얼마나 많을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현장에서 함께 싸우며 웃고 울게 될지 상상해봅니다.

 

지금 보니 10개월의 활동이 제게 남긴 것은 여전히 설렘이고 즐거움이다 싶습니다. 고작, 아직 이정도 왔습니다. 이제야 시작점으로 나온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이 마음 안고 앞으로 앞으로 가보겠습니다. 후원인 여러분도 함께 해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