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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죽음의 발전소를 멈추고 바꾼다! 또 다른 김용균과 김충현이 다시는 없도록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인 이 날을 이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 님의 기일로 함께 기억한다. 2018년 12월 10일 김용균의 죽음에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도록 하자는 다짐을 새기며 투쟁했지만, 2025년 6월 2일 또다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차 하청노동자로 일하던 김충현 님이 돌아가셨다. 윤석열을 끌어내리며 열리게 된 대선 전 날 전해진 소식이었다. 이후 빈소에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 숱한 정치인들이 찾아왔지만, 협의체를 구성해 대책을 내놓겠다는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충현의 동료들은 여름부터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거리에서 싸워왔다.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는 2019년 다단계 하청구조로 위험을 외주화 해 온 발전소의 구조적 문제를 짚으며, 재발방지를 위한 첫 번째 과제로 김용균이 일했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김충현이 일했던 '경상정비 분야'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라고 권고했었다. <휴지조각이 된 조사보고서>, 그해 말 김용균 1주기를 앞두고 열린 권고 이행실태 점검 토론회 제목처럼 권고는 무시됐고, 위험을 방치하며 떠넘기는 현장에서 김용균의 동료들은 계속 일해 왔다. 또다시 김충현을 떠나보내고 잇따른 발전소 사고 소식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발전노동자의 고용과 안전을 논의할 협의체를 요구하며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용산 대통령실 앞에 농성장을 차렸다. 농성투쟁은 8월말 근로자 지휘소송 1심 판결을 앞두고 법원 앞으로 또 이어졌다. 법원은 김충현과 동료들이 해온 발전 설비 유지·보수 업무가 원청인 한전 KPS의 지휘·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불법파견’으로 직접고용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한전 KPS는 책임을 회피하고 거부하며 항소했다.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가 8월 출범했지만, 논의는 지난했고 연말 종료시한을 앞두고 진전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김충현의 동료들은 다시 11월 농성투쟁을 시작했다. 12월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면서 용산에서 청와대로 농성장 위치도 바뀌었고, 협의체가 열리는 날에는 산업안전공단 서울광역본부를 찾았다. 65일 동안 차가운 길 위에서 풍찬 노숙 투쟁을 이어왔고, 한전 KPS의 모든 2차 하청노동자에 직접고용 원칙을 확인하며 지난 1월 22일 농성을 마무리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일부 공정에 한정하려던 직접고용 범위를 확대하고 원칙으로 세웠지만, 노사전협의체라는 또 다른 자리를 통해 원청과 하청노조가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목숨을 잃는 일이 잇따라도, 법원의 판결이 있어도 책임을 외면해온 한전 KPS를 상대로 교섭하고 투쟁하는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또한 태안화력발전소 1호기가 2025년 12월 31일로 폐쇄되었고, 2038년까지 전국적으로 석탄화력발전소 37기가 폐쇄될 예정이다. 정부는 발전소 폐쇄를 예정할 뿐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에 대한 대책은 고민하지 않는다. 발전노동자들은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 외치면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과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이에 대한 방안도 향후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위원회를 꾸려 논의해가겠다는 계획이다. 투쟁하며 만들어온 길보다 다시 투쟁하며 만들어가야 할 길,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럼에도 더 넓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김용균 그리고 김충현 투쟁이 열어온 길 위에서 다른 지역 발전소에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로 일하는 동료들이 모이고 노조로 뭉치고 있다. 한전 KPS로부터 최저가로 도급계약을 따내고는 노동자의 인건비로 가야 할 노무비를 착복해온 하청업체에 맞서 싸우며, 노동자들은 인천 지역 발전소에서 매일 이른 아침 선전전을 진행하고 현장을 바꾸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싸울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 12월 10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렸던 김용균 7주기 추모집회에 발언하러 무대로 오른 한전 KPS 비정규직지회 김영훈 지부장이 앞에 앉아있던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님에게 큰절을 하며 했던 말이다. 한동안 맴돌던 그 말의 무게를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마음이었을까 떠올려보게 된다. 다시는 이 같은 슬픔이 없도록 김용균 투쟁이 열어온 길 위에서 김충현의 동료들이 싸웠고, 그렇게 낸 길은 또 다른 발전노동자들과 연결되며 더 너르게 이어지고 있다. 직접고용 쟁취,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대책 마련,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발전노동자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죽음의 발전소를 멈추고 바꿔낸 발전노동자들과 함께 6월 2일 김충현 님 1주기를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