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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즐거운 물구나무] 엄마와의 첫 외출

발병 6개월 만에 뇌병변 2급 장애인이라는 판정을 받은 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엄마에게 '밖으로' 이동할 자유는 없었다. 조금씩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엄마에게 쌩쌩 달리는 자동차는 '멈춤' 신호를 해석할 수 없는 기계로 느껴졌고, 세상에 있는 모든 계단은 '진입금지' 팻말처럼 보였다. 그래서인가? 거의 3주 동안 엄마와 외출할 꿈도 꾸지 않았다.

4주째 접어들어, 드디어 엄마와 함께 첫 외출을 시도했다. 한약을 지으러가기 위해 '장애인콜택시'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자체가 힘들었다. 통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보니 계속 통화중이라는 신호음만 들렸다. 통화가 되고난 후에도 콜택시 기사와 연결되는 시간, 콜택시 기사가 집으로 오는 시간을 합치면 거의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은 이동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전화와 씨름해야 했다. 집에서 한방병원까지는 그나마 콜택시로 갈 수 있었지만, 한방병원에서 집으로 갈 때에는 결국 콜택시와 연결이 되지 않아, 두 시간을 기다리다 힘들게 일반택시를 타고 왔다. 가까스로 통화가 된 안내원은 비어있는 콜택시가 없다며 기다리라는 말 말고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으윽!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때로는 우울함이 때로는 분노가 출렁거렸다. 장애인이동권투쟁의 결과, 서울시는 2003년부터 장애인콜택시 100대를 운행해왔다. 그러나 장애인콜택시 100대 운행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공급이 부족하면 당연히 공급을 늘리는 게 원리 아니겠는가! 서울시 통계를 보니, 2005년 장애인콜택시 이용신청자 중 52.6%만이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첫외출에서 나와 엄마는 52.6%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올해 들어 서울시는 장애인콜택시 20대를 늘린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실재 장애인콜택시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의 수요에 기반하지 못한 이상 여전히 장애인에게는 시설과 집에만 있으라고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참고로 서울시에는 23만9647명의 장애인이 있다.)

엄마와 함께 한 첫 외출 이후, "누구에게나 이동할 권리가 있다"는 명제에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비장애인에게만 이동의 권리가 존재할 뿐 장애인에게는 이동의 권리가 없다. 인간이 경험하는 다양한 조건에 기반 한 인권개념의 확장, 이러한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인권'은 아름다운 말잔치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가! 오늘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서울 도로를 누비고 있을 장애인인권운동가들의 투쟁을 떠올리니 절로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