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적응’

어쓰
원래 추위에 약하고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 편이었다. 언제나 겨울보다는 여름이 좋다고 말해왔는데, 올여름을 겪으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저 출근길 지하철역까지 잠깐 걸었을 뿐인데도 땀에 흠뻑 젖을 때, 땀이 난 상태로 지하철을 타서 에어컨 바람에 덜덜 떨 때, 버스를 기다리는 5분 동안 아무리 그늘에 들어가거나 손부채를 부쳐도 온몸에서 열감이 사라지지 않을 때... 변화한 기후에 적응하는 일은 아직 막막하기만 하다.

미류
노안에 적응하는 데 몇 년째 실패하고 있다. 작년에 돋보기 안경도 맞췄는데 멀리하게 된다. 아직은 괜찮다고 우기고 싶은 마음 반, 쓸 때는 세상이 밝아져 기분이 좋은데 벗는 순간 세상이 어두워져 두려운 마음 반. 버스에서 신문 읽는 습관이나 밤늦게까지 책을 읽는 욕심 같은 것들도 쉽게 버리지 못하면서 노안이라고 징징대고, 이제 나는 읽고 쓰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 같은 좌절감에 휩싸이고. 눈만 계속 혹사당하고 있다. 선배님들, 도대체 노안은 어떻게 적응하는 겁니까?


올해 3월 Kings Of Convenience 공연에서 한 번, 7월 Marcos Valle & Azymuth 공연에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은 후... 라이브홀 스탠딩 공연은 더 이상 보러 올 일이 없겠구나 직감했다. 시작을 알리는 다운 조명과 함께 일제히 불을 밝히고 내내 꺼지지 않는 핸드폰들 사이로, 기다렸던 소리마저 사라지고 모든 기대도 사라졌다. 함께 간 이는 '네가 요즘 공연을 안 가서 모르나 본데'라며 사전에 경고하기도 했는데, 이건 도무지 적응할 수 없을 것 같다. 적응보단 이렇게 음악도 공연도 하나 둘 포기하며, 그냥 더 이상 스탠딩을 버틸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생각키로 했다.

해미
낯섦으로부터 사랑스러운 점을 찾아내는 게 나의 적응법이다. 물론 순전히 나의 ‘해석’을 거쳤단 점에서 오해 가득한 ‘콩깍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뭔갈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환상인 법. 순간순간의 낯섦’들'을 마주하며, 헌 콩깍지를 새 콩깍지로 갈아끼우기도 하며 그렇게 적응을 거듭할 뿐. 사랑방의 사랑스러움 하나! 행사 기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여전히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들. 어쩌면 거기 있는지도 까먹었을 정도로 일부로 받아들인 그것들로부터 ‘책임감’과 ‘애정’이 느껴진달까. 콩깍지 아래로 ‘귀찮음'이 보일랑 말랑… 하지만 일단은 사랑방 나름의 ‘사랑'이라 해두자.

정록
2019년부터 기후운동을 한다고 여기저기 기웃대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기후 적응 중이다. 그런데 이 곳이 또 그렇게 고정되어 있는 완고한 곳은 아니어서인지 여전히 새롭다.

가원
적응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가 맺고 있는 관계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일방향의 ‘순응’이라기보다 쌍방의 인내가 수렴되는 지점을 찾는 적극적인 행위이지 않을까.

민선
어떤 여행을 바라느냐, 예전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다니는 게 남는 것이라 생각했다. 주요 명소를 점찍으며 훑기 위해 계산하며 다녔는데, 나이의 영향일지 달라졌다. 숙소 옮기는 것이 그렇게 싫고,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숙소에서 뒹굴면서 그곳을 탐색할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해졌다. 낯선 공간과 친숙해지는 ‘적응’의 조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