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20.25,27,28,29...30

2023년 인권운동사랑방이 3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저와 사랑방은 알고 보니 동년배이기도 해요. 동년배라고는 해도 사랑방의 30년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여러 사람들이 사랑방을 함께 만들어왔기 때문이겠지요. 여러 사람의 시간이 쌓여있는 사랑방 30년의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입방하기 전부터 사랑방이 오래된 단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실 몇 십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단체라는 의미는 나중에서야 느꼈어요. 입방 후 듣게 되는 인권운동의 역사에 인권운동사랑방 이름이 튀어나올 때, 사랑방에서 독립해 나간 여러 단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말입니다. 그때 마다 저는 ‘너무 사랑방을 모르고 입방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동안 전 나이에 맞게 행동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요. 나이에 따라 주어진 삶의 방식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공부가 중요했고 잘 하고만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남들처럼 대학에 가고 싶었어요. 그 나이 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남들 하는 만큼은 하고 싶었어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에 빠져들었어요.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이 보이지 않았죠. 그러던 차에 친구 따라 참여했던, 인천연합대학생 단체를 통해 참여한 현장이 떠올랐어요. 밀양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길에서도 자보고, 제주도 강정기지 반대를 위해서 도로에서 경찰과 대치도 하고, 변화 속에 있다는 것이 가슴 뛰는 일이라고 느꼈는데요. 집회 몇 번, 농활 한 번에,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에 빠졌어요. 주변에 단체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었어요. 막연히 단체에서 일하고 싶은데, 특정한 의제에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뚜렷한 의지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구글링하다가 인권운동사랑방을 발견했어요.

 

사랑방 홈페이지에 공유된 글을 몇 개를 읽고 즉흥적으로 사랑방 자원활동가를 신청했어요. 하루 이틀 연락이 없고 자원활동 신청을 했다는 사실을 잊어갈 때쯤 답장이 왔어요. 한번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거였어요. 그때만 해도 잘 모르는 단체였기에 아주 작은 의심이 일었어요. 특히 사무실 위치가 주택 한 가운데였기에 더 그랬어요. 사랑방에 대해 더 찾아보니 오래된 인권 단체였고, 일단 한번 가보고 판단하자는 생각으로 자원활동가 상담을 하게 되었죠. ‘당장 단체에서 일 해보자’가 아니라, ‘알아보자’인 상태로 사랑방과의 인연이 시작됐어요.

 

어느덧 시간이 흘러 활동할 곳을 찾던 저에게 사랑방은 먼저 함께 활동해보자는 제안을 해줬어요. 당시에 정말 일이 하고 싶었고, 단체 활동이 해보고 싶었고, 소속감이 필요했어요. 저에게는 거절 할 수 없는 제안이었어요. 2021년 5월 31일부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 제 마음은 ‘과연 할 수 있을까’ 반,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반이었지만, 결국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지요. 집회를 참여해본 사람에서 집회를 주최하는 사람으로, 농성장을 방문하는 사람에서 운영하는 사람으로, 참여자에서 진행자의 위치로 바뀌었어요. 한마디로 고민을 함께 해야 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어요. 한편 갈피를 잡지 못하거나, 제 옷을 입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30이라는 숫자를 앞둔 제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어요.

 

더 늦기 전에 해보지 않은 걸 해 보고 싶다. 계속 뭔가를 놓고 온 것 같았거든요. 회사에 취업하는 친구가 늘고, 친구의 경력이 쌓일 때마다 경험하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커지기 시작했어요. 이상하게 25이라는 숫자 이후로 점점 더 조급해지기도 하고 앞자리 수가 바뀌는 기점마다 알 수 없는 부담감에 스스로를 재촉하게 되더라구요. 고민하고 또 해봤는데요. 꽤 길게 생각해봤어요. 이번에도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보려고 해요. 그래서 2023년 1월, 사랑방 상임 활동을 멈추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올해는 인권운동사랑방이 30주년이 되는 해잖아요. 인권운동사랑방에게 30년 동안 고생 많았고, 어떤 길을 가든 묵묵히 응원하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30이라는 숫자가 엄청 큰 수도 아니지만 적은 수도 아니기에 무언가가 채워져야 할 것 같은 혹은 그 느낌만큼의 역할을 해야할 것만 같은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책임감보다는 지금까지도 함께 고생했다는 든든함으로 서로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한 해가 되면 좋겠어요. 저는 이제 인권운동사랑방 30주년 ‘함께위원회’로 함께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