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후원인 인터뷰

직접 꾸린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박씨 님을 만났어요

저희 집에서 아주 조금만 걸어 나와 횡단보도를 두 개 건너면 제 친구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집이 있습니다. 혈연관계도 아니고 나이도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를 선택해 직접 가족을 꾸려 살아가는 친구들이에요. 작년 <빠듯하지만 뿌듯하게 –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인 하기>를 진행할 당시, 한 날 한시에 사랑방 후원인이 되어줌으로써 사랑방 상임활동가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를 만드는 동시에 “혹시 어쓰가 낮술을 마시면서 가입시킨 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오기도 했는데요. 이번 달 후원인 인터뷰에서는 교육공동체 나다의 신입활동가, 박씨 님을 만나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박씨입니다. 지금은 교육공동체 나다라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고, 활동한지는 3~4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나다는 청소년들과 함께 인문학 교육을 진행하는데, 공동체적 관점을 가지고 약자에 편에 서서 인문학을 말하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주로 인문학 강좌를 열어서 청소년들과 만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박씨는 어떻게 나다에서 활동하게 되었나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다를 알게 되었는데, 그 때 나다에서는 ‘아무나 볼 수 있는 인문학 잡지 나다wom’이라는 이름의 청소년 인문학 잡지를 기획하고 있었어요. 당시 만났던 나다 활동가가 저에게 나다와 나다wom을 소개하고, 청소년과 함께 인문학 잡지를 만들어보려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줬죠. 같이 잡지도 만들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초대해서 나다에 가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당시에 제가 청소년이었는데 나다 사람들은 저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지도 않고, 제 얘기도 잘 들어줬어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사회에 별로 없잖아요? 또 다른 사람들이 잘 안 하는 질문을 저에게 많이 해줬던 것 같아요. 요즘 어떻게 지내? 학교 다니기는 괜찮아? 힘든 건 없어? 이런 질문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하도 나다 사무실에 붙어있다 보니 엄마가 연락해서 집에 오라고 하면 가기 싫어서 울기도 했고요. 몇 년이 지나고 난 뒤 나다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다에서도 함께 해 보자고 말해줘서 지금 이렇게 일하게 되었어요.

나다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담당하고 있나요?

나다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요, 이 채널에 올라가는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 운영은 나다에서 진행해온 인문학 교육의 내용을 아카이빙하는 동시에, 청소년들과 접할 수 있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며 시작했어요.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자는 생각도 있고요. 나다에서 강좌를 듣던 청소년과 나다 활동가가 서로 이야기 나누는 형식의 영상이 3화까지 올라와 있고, 또 새로운 기획도 논의하는 중이에요.

또 나다에서 일상적으로 진행하는, ‘휴머니잼’이라는 이름의 인문학 강좌가 있는데요. 다음 주부터는 제가 초등부 강좌를 담당해 진행할 예정이에요. 처음 나다 활동을 시작하고 신입활동가 기간 동안 다른 활동가들이 진행하는 강좌를 많이 참관했는데요, 그때는 뭔가 알 것 같고 저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막상 진행을 맡아 준비하려니 긴장을 많이 하는 중이에요. 이렇게 진행해도 될지,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지, 강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궁금해 할지, 나는 이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등등 고민이 많습니다. 강좌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을 준비하는데 가장 시간이 많이 걸려요. 이 부분이 제일 어렵지만, 또 제일 재밌기도 해요. 이번에 시작하는 초등부 강좌는 인권을 주제로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 한창 진행 중인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10만행동처럼 같이 이야기 나눌 만한 예시를 잘 찾아서 진행해보려 합니다.

△ 교육공동체 나다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청소년 미디어 나다wom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지내며 나다가 겪은 변화도 있을까요?

강좌 기획과 진행 방식이 많이 변했어요. 원래 위에서 이야기한 일상강좌 ‘휴머니잼’은 나다 공간에서 진행했는데, 지금은 거의 온라인으로 진행 중이에요. 사실 중고등부는 초등부 시절부터 오래 봐온 사람도 많고 온라인 교육 진행에도 익숙한 측면이 있어서 어렵더라도 진행은 되는데, 초등부 같은 경우는 새롭게 찾아오는 분들이 많이 줄어서 걱정이에요. 외부 강좌를 포함해서 전체적인 강좌 수 자체도 줄어들었고요.

사실 나다의 가장 큰 강점은 멋들어진 내용의 인문학 강의보다는, 청소년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며 관계를 맺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나다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예 만날 수가 없으니까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워졌어요. 예전에는 휴머니잼 강좌가 끝나면 서로 근황을 묻고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강좌를 진행하면 끝나고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기도 어렵더라고요. 빨리 서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입활동가로 활동하며 박씨가 느끼는 좋은 점과 힘든 점이 있나요?

좋은 점이라고 하면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것? 단체 바깥에서 저를 소개할 때도 신입활동가라고 하면 일단 반갑게 맞아주고, 질문이나 격려를 주는 경우가 많아요. 단체 내부에서도 힘든 건 없냐고 물어온다거나, 제가 담당한 업무일지라도 같이 살피고 도와준다거나,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좋은 듯해요. 반면 스스로 조바심을 느낄 때에는 조금 힘들다고 느껴요. 사실 모든 일은 능숙해지는 데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럼에도 빨리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게 안 되면 조금 조급해지는데, “그래도 하다 보면 잘 하겠지” 라고 스스로 말해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느끼는 조급함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뭐든지 시작하는 몇 개월간은 자신에게 자비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뭔가 실수하거나 제대로 못 하면 일이 잘 안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 저 때문에 더 고생한다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든 경우가 있잖아요. 일을 잘 못한 것에 대한 자책도 있지만 동시에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 엄청 큰데, 그렇게 제가 혼자 너무 자책하고 미안해하면 동료들도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열심히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려고 해요. 설령 실수하더라도 ‘괜찮아, 신입활동가잖아’ 이런 말을 저 혼자 하는 거죠. 빨리 잘 해내고 싶은 조바심은 주변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만 몰입한 결과라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인연으로 사랑방 후원을 시작하셨나요?

원래는 사랑방이라는 단체 이름을 전해듣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어요. 친구의 친구가 활동을 한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요. 그런데 작년에 저와 친구들이 함께 사는 집 근처로 사랑방 활동가인 어쓰가 이사를 오면서 가까이 지내게 되었죠. 그리고 작년 말 <빠듯하지만 뿌듯하게>를 통해서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어쓰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같이 사는 식구들과 다 함께 후원인이 되었어요.

당시에 많이 기가 살았던 기억이 나네요. 말씀하신 친구들과는 어떻게 같이 살게 되었나요?

원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자취를 했어요. 엄마와 함께 사는 게 편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집 계약이 끝나갈 무렵이 되니 혼자 살기가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 부천에서 자취를 했는데 나다wom을 통해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서울에 사니 서로 만나기도 힘들었고요. 그때 마침 나다wom을 같이 만들었던 친구 두 명과 나다 활동가 한 명도 이사를 앞두고 있었어요. 타이밍이 잘 맞아서 모였고, 같이 살기로 결심한 뒤에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서 지금은 네 명이서 함께 살고 있어요. 최근 나다 활동가인 쩡열이 쓴 글(*)에도 적혀있듯이 혈연관계도 아니고, 나이도 다르지만, 또 저희 할머니는 “친구와 사는 건 잠깐이니 빨리 결혼해서 가족을 꾸리라”고 이야기하시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살고 있습니다.

△ 나다 활동가 쩡열의 글(*) ‘평범함’ 바깥에서도 괜찮은 세상을 원한다

엄마와 함께 살 때는 편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지금 친구들과 함께 사는 일은 어떤가요?

옛날에 제가 나다에서 놀다가 외박을 하게 되면 엄마가 항상 저에게 “남의 집에서 자는 거 안 불편하니? 나는 남의 집에서는 못 자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당시에 저는 저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잠이야 뭐 어디서든 자면 되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이해가 돼요. 며칠 전에 일이 있어서 아는 사람 집에서 하루 잘 일이 있는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때 확실히 느꼈는데,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까지 살던 집은 ‘내 집’이 아니라 ‘엄마 집’이었고, 그러니 사실 저에게는 ‘남의 집’이나 다름없었던 거예요. 엄마 집이든 다른 사람 집이든 모두 남의 집이니까 큰 차이를 못 느꼈죠. 이제는 ‘내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생기니까 차이가 크게 느껴져요. 물론 예전에도 집이 억압적이지는 않았고, 엄마도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 집이 편하지는 않았어요. 지금은 다른 데서는 못 자겠어요. 사실 지금 사는 집이 너무 좋아서 같이 사는 친구들과 함께 이 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저희가 법적 가족이 아니다보니까 대출이나 주택 구입에서 제약이 많더라고요. 이래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으로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한 마디 남겨주시겠어요?

사랑방을 후원하기 전부터 인상적이었는데, 예를 들어서 기자회견 연명 단체나 행사 주최 단위에서 사랑방 이름이 눈에 많이 들어왔어요. 중요하거나 누군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싶은 일에는 사랑방이 함께 보였던 것 같아요. 사실 소식지를 열심히 읽는 편은 아니었는데, 앞으로는 챙겨보도록 노력할게요.

또 사랑방에도 새로운 상임활동가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단체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외부적으로도 서로 의지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랑도 오며가며 만나면 인사하고, 연이 닿으면 함께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희 어쓰도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