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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우리공화당 광화문 점거, 혐오와 폭력이 문제다

천막이 아니라 혐오와 폭력에 맞서자

공간에는 기억이 스민다.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곳이 있는가 하면, 지나가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곳이 있다. 그리고 어떤 곳은 너무나 많은 생각이 밀려와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광화문 광장은 그런 곳들 중 하나이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친 곳, 촛불이 모여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곳. 울고 웃었던 기억이 생생한 광화문 광장은 최근 신상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혐오와 폭력이 점거한 광화문 광장

지난 5월 10일, 우리공화당(전 대한애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과 '탄핵반대 집회 사상자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 기습적으로 천막을 설치했다. "감히 광화문 광장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퍼부었던 세력이, 5년간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천막이 자리를 지켰으며 지금은 세월호 기억관이 있는 곳에 천막을 설치하고,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입에 담는다고?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리공화당은 광화문 광장 천막을 거점으로 삼아 세월호 기억관을 지키는 활동가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내뱉고, 심지어 물리적인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악의 가득한 말들은 광화문을 지켜온 세월호 활동가들을 극도로 위축시켰고, 우리공화당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설치 이후에는 천막 수를 야금야금 늘리며 가스통을 보란 듯이 적재하는 등 혐오와 폭력으로 광화문 광장을 점거했다.

이런 와중에도 경찰은 상황에 개입하거나 중재하지 않고 알아서 피하라는 식으로만 방관했다. 말도 안 되는 시비에 휘말려도, 멱살을 잡히거나 뺨을 맞아도, 경찰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세월호 기억관을 지키는 활동가들은 자비로 보디캠을 구매하는 등 자구책을 찾아야만 했다. 지역의 퀴어 퍼레이드, 노동자 집회 등에서 공권력이 보인 태도와 다를 바 없었다. 악의로 가득한 혐오와 폭력을 방관하며 묵인해온 공권력은, 바로 그 묵인으로 인해 마치 혐오가 폭력이 아닌 의사 표현이자 정치적 입장인 것 마냥 승인해왔다. 우리공화당이 광장에서 혐오와 차별을 전시하며 이러한 폭력이 다른 이들에게 향할 때, 공권력인 경찰은 이들의 폭력을 제지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불법 정치 집회'라서 철거했다?

또 다른 공권력인 행정기관은 어떨까. 6월 25일, 천막 설치 47일 만에 서울시는 2000명이 넘는 인원을 투입해 강제 철거를 진행했다. 이날 서울시는 "우리공화당이 아무런 절차도 밟지 않은 채 천막을 쳤고, 광화문광장에서는 원래부터 정치적 집회를 할 수도 없"기에 천막을 철거했으며, "광장을 시민의 품에 돌려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일 아침 이낙연 총리는 우리공화당을 겨냥해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정치적 집회를 할 수 없다는 서울시의 말은 '서울특별시 광화문 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광화문 광장 조례)를 근거로 한다. 광화문 광장 조례 제 1조는 "시민의 건전한 여가 선용과 문화 활동 등을 위한 광화문 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을 두고 "광화문 광장에서는 정치적 집회를 할 수 없다"고 서울시는 말한다. 이처럼 강제 철거는 우리공화당이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정치적 집회를 했다는 '불법성'을 문제 삼아 진행되었다.

 

불법이 아니라 폭력이 문제다

그러나 집회 시위의 자유는 공공의 장소라면 그 누구의 허가를 받지 않고도 자유롭게 모이고 말하고 행동할 권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집회 금지 장소를 명시한 집시법 11조가 작년 위헌 판결을 받았다. 모두가 자유롭게 모이고 말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공공기관의 역할이 있을 뿐이다. 시민들은 2008년에도, 2016년에도 광화문 광장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 정치적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정치적 집회는 할 수 없다'는 서울시의 발언은 공허할 뿐 아니라, 이러한 역사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하다.

문제는 천막 자체가 아니라 천막을 거점으로 자행되는 폭력이다. 우리공화당을 광장에서 몰아내야만 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법으로 정치적인 집회를 했기 때문이거나, 서울시의 말처럼 시민의 건전한 여가 선용과 문화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공화당이 광장에서 쏟아낸 혐오와 폭력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발표에서도 드러나듯이 강제 철거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이야기만 하도록 강제하는 일이며, 이 족쇄는 언제든지 모두에게 향할 수 있다. 이는 광장을 시민의 품에 돌려주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강제 철거 이후 우리공화당은 형평성 운운하며, 심지어 본인들이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UN 인권이사회 제소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세월호 천막과 우리공화당 천막의 차이로 당시 정부의 지원이나 서울시와의 사전 협의 등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는 정부의 허가를 받으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세월호 천막과 우리공화당 천막의 차이, 정치적 견해를 넘어 혐오와 폭력을 통해 정치와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우리공화당의 문제는 누가 봐도 명확하다. 서울시가 '불법성', '정치성'을 이유로 강제 철거를 진행한 것은 오히려 이 차이를 흐리며 형평성 논란을 불러오는 결과를 낳았다.

 

모두가 자유롭게 광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리공화당은 강제 철거 5시간 만에 다시 광화문 광장에 천막을 쳤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 6월 28일 청계광장으로 천막을 옮겼지만, "광화문 광장에는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공화당의 천막 재설치 이후 서울시는 다시 계고장을 보내는 등 절차를 밟아 강제 철거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우리공화당이 잠시 광화문 광장을 비운 틈을 타서 광장에 나무 화분을 쌓는 등 천막을 없애는 데에만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미 보았다시피 천막은 언제든지 다시 설치되거나 그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천막만 없앤다고 우리공화당이 휘두르는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서울시가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싶다면, 다시 천막 철거와 광장 봉쇄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 우리공화당이 휘두르는 혐오와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광장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물리력을 동원하는 일과, 광장의 자유를 보장하고 북돋기 위해 혐오폭력에 맞서는 일은 전혀 다르다. 앞으로 강제철거를 위한 절차를 다시 밟겠다는 서울시와, 폭력을 수수방관해온 경찰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천막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혐오폭력에 맞설 때, 비로소 광장은 시민의 품에 돌아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