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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끝없는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세계분쟁과 평화운동』, 아르케, 2004년 9월 5일, 227쪽 ♠


중얼거리는 프롤로그
사랑방에서 지난 겨울, 자료실 정리를 하며 한 권의 책을 타이프 치다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책의 가운데 단락 20세기의 분쟁 부분. 쿠르드, 카슈미르, 시에라리온, 부룬디, 앙골라, 스리랑카……. 이십여 개의 분쟁지역의 이름을 활자화하며, 나는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지역이 몇 개 없었다는 것에 진심으로 부끄러워졌다.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알지 못하면 고민할 수 없다, 도울 수 없다’는 생각에 난 얼마나 나태했는지, 내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절규를 놓쳐 버렸는지 진심으로 후회했다. 그리고 이제 연이 닿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혼란스러운 서평

이 책에는 상당히 흥미롭고 의미있는 지식들이 많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탄생하게 한 바스크 분리주의, 콩고에서 일어난 아프리카의 2차 대전, 유엔도 등을 돌려버린 기아의 대명사 소말리아, 종족 차별이 부른 비극의 땅 르완다, 시에라리온, 수단, 부룬디……. 뻔뻔하게 이름을 붙이자면, 그래서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읽힐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책을 “훌륭한 교양서적”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이 책에서 보인, 20세기의 수많은 내전과 분쟁을 관통하는 거대한 ‘악의 축’은 참으로 (글쎄 이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순수하다. 민족, 종교, 신념, 자결권, 국경. 그러나 이 개념들에 각 축들의 배타성과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촉매제로 작용하면서 늘 양상은 정해진 패턴처럼 똑같이 전개되어 간다.

A민족의 1명이 B민족의 2명을 죽인다.
B민족의 2명이 A민족의 10명을 죽인다 (혹은 이 과정은 생략될 수도 있다).
A민족의 10명이 B민족의 100명을 죽인다.
A민족과 B민족의 분쟁 사이에서 자본 혹은 권력의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는 (사실은 떡 전체를 가지려는) C민족은 죽음의 가장 첫머리에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고
죽음의 과정에서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고
죽음의 마무리에서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이 엄청난 화학작용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태어난 것이라고는 학살, 납치, 고문, 강간, 즉결처형, 보복살인, 테러, 폭격, 질병, 기아, 신체절단 그리고 사라진 이들을 위해 눈물 흘릴 힘조차 없는 남겨진 사람들뿐.

“저는 사람들의 손을 자르는 것을 보았어요. 10대의 여자아이들이 강간당한 뒤 죽었고,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산 채로 불살라졌어요……. 많은 시간을 저는 단지 마음속으로 울었어요. 감히 소리 내어 울 수 없었기 때문이죠.” - 시에라리온에서 1999년 1월에 붙잡힌 14살 소녀 책을 읽어나가며, 나는 그들이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유에 대해서 배워 나간다. 점점 명확해지는 분쟁의 이미지와 그 유사성에 대해서도 알아나간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리고 결정적이게도. 나는 오래된 홍차 집에서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사라진 후투족의 소녀와, 코소보의 참전용사와, 팔레스타인의 소년과 스리랑카의 어머니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아는 것이 적고 고민이 적어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다. 비폭력을 말하기엔 이미 그들의 한은 깊으며, 사랑하는 가족들의 무덤은 너무나도 많다. 폭력을 말하기엔 이미 그들의 피는 넘쳐나며, 그릇에 담긴 빵 한 조각은 너무나도 작다. 이 처절한 분쟁 중에서 나는 도대체 언제 투입되어야 할지 모르는 가련하고 형편없는 축구선수처럼 안절부절못할 뿐이다.

네버엔딩 에필로그
그러나 경기의 진행상황과 매뉴얼을 나는 연신 번갈아 보며 나는 조금씩 심판의 옷깃을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저건. 아닌데요.
비록 ‘그들’의 거대한 목소리에 심판의 휘슬이 가끔 묻히긴 해도, 심판의 제지가 격렬한 난동을 잠재우기에 힘이 부쳐 보여도, 이 끝없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그들의 진부하지만 진지하고 지속적인 노력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