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위한 섹스 자원봉사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적되었던 것이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성매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점점 복잡해진다.) 그래서 ‘매매춘’에 관한 책을 찾고자 알라딘을 검색한 다음, '매매춘'이라는 키워드를 직접 달고 출판된 책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찾아서>를 읽고 토론하게 된 것이다.
저자의 첫마디는 제1장에서 볼 수 있듯이 ‘매매춘이 어때서?’라는 도발적인 물음이었다. 저자는 사적인 영역에서 돈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성적 표현과 감성욕구 행위’를 비도덕적이라는 잣대를 통해 제재할 권리가 사회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물으면서, 그러한 권리가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가장 근본으로 삼아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가기 시작한다. 현재 성매매가 불법으로 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갖가지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이 말은 지금부터 판매자의 입장에 서있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일 것이다)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부과하고 성매매를 비범죄화하는 것이 그들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페미니즘 이론은 성매매를 근절시키려는 목적 하에 그것에 대해 부정하고 비난하는 한편, 이와 관련된 성매매 여성들을 구출하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오히려 성매매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도덕적으로 더욱 낙인찍히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고 진정으로 그들의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섹스라는 행위를 매개로 한 노동이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권력관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근절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저자는 성매매를 여성억압적인 권력관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 근본적인 억압의 재생산 기제인 결혼제도를 없애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또한 저자는 역사적인 예를 들어가며 성매매가 자본주의와 직접적인 연관을 지닌 것이 아님을 밝혀내고, 자본주의가 사라진다면 절로 성매매도 사라질 것이라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해서 비판하며, 인류 역사 이래 성매매 근절은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더한다.1)
책을 읽으며 저자의 물음에 겹쳐지는 나의 의문은 ‘성매매가 자본주의 속에 존재하는 여타의 노동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점이었다.2) 우리에게 노동은 이미 자아실현이라는 존재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권력관계 혹은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는 다른 노동에서도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다.
또한 당장 성매매를 비범죄화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성매매 여성들을 바라보는 낙인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성매매를 불법화하여 음지로 몰아넣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하지만 다른 노동자가 그렇듯이, 성매매 여성들의 경우도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집단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성매매 여성들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들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비도덕적이고 불법을 행하는, 그래서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소위 ‘년들’이라는 낙인 하에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런 만큼 성매매 여성들이 포주로부터 임금을 착취당하지 않고 남성 구매자들로부터 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그들의 조직을 만들어 단결하고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법의 보호’라는 울타리로 성매매를 끌어들이는 최소한의 요건이 아닐까?
이러한 의견에 정서적인 반동으로 흔히 날아오는 되물음은 주로 ‘역지사지론’이다. ‘너라면’, ‘네 가족이라면’ 등으로 시작하는,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달라질 것이라는 지적은 누구나 이러한 주장을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다. 그러나 성매매는 자본주의 하에서 누구나 기피하는 3D업종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도 3D업종을 다른 사람에게 권장하진 않지만, 3D업종은 분명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의 한 유형이다. 성매매 또한 누구나 원치는 않지만 결국 돈을 매개로 종사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분명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이 아닐까? 따라서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성매매 여성들을 음지에 몰아넣고 인간 이하의 처우를 방치할 수는 없다.
사실 글을 맺는 이 순간까지 나는 망설인다. 나는 성매매 속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감정을 완벽하게 공유할 수 없는 생물학적 남성인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고, 둘째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별다른 토론 없이 마초로 낙인찍히고 마는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생각과 실천을 행한다고 소박하게 생각했던 내 믿음이 이율배반으로 비춰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떠한 문제에 대해 관점과 입장이 있고 이를 둘러싼 배경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 있다. 책을 쓴 저자에게도 새로운 문제제기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 환경이 있을 것이고, 나에게도 저자의 전체적인 입장에 은근히 기대게 만드는 환경이 존재할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듯이, 내 문제의식이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의 문제에 대해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들의 다른 목소리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 주 *****
1) 범용: “이성적으로 나는 성매매에 대한 저자의 입장에 반대할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찾아서>를 읽고 난 후 내가 가진 생각을 정확히 표현한 문장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성매매를 근절하려는 숱한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성매매의 근절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성매매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성매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딴죽을 걸고 싶다. 왜냐하면 이러한 저자의 인식은 자칫 역사발전의 현단계를 마치 최종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 다양한 진보의 상상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성매매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선에서 개선을 위한 노력을 벌이려는 데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성매매를 폐절하기 위해서도 성매매를 비범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임금노동의 폐절을 위해 싸우는 진보운동 진영이 임금노동을 불법화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노동자를 조직하고 자본가와 대항하게 만드는 전략을 채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2) 재승: 이 의문은 내 머릿속에서 절로 떠오른 것이 아니고, 기존의 성매매 관련 논의의 쟁점이기도 했거니와, 책읽기 모임에서 제기된 물음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