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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인권이야기] 클릭 한 번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아!

끌리고 쏠리고 들끓어도

15년 전 인터넷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 많은 이들은 ‘인터넷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꿈꿨다. 물론 말 그대로 ‘유토피아’ 같은 건 없었고, 지금 인터넷 공간은 -일상적인 감시와 모든 것의 상품화를 조장하는- 새로운 인권 침해의 장으로 그 정체성을 굳히는 듯하다. 유토피아는커녕 ‘인터넷 디스토피아’의 가능성만 더욱더 커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종종 ‘트위터 민주주의’ 같은 말을 되뇌는 이들이 있다. 트위터와 같은 사회 연결망 서비스가 민주주의의 진전에 도움을 준다는 얘기다. 북아프리카 시민의 민주주의를 향한 봉기인 ‘재스민 혁명’이 확산되는데 트위터가 큰 역할을 했다는 예까지 듣고 보면,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유럽에서 가장 민주화가 덜 된 국가 중 하나인 벨로루시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 2006년 독재자 알렉산더 루카센코의 3선이 조작 선거로 확정되자,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물론 독재자는 수백 명의 시민을 체포하고, 제1야당의 후보를 감금했다.

얼마 후, 한 사람이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플래시 몹(flash mob)’을 제안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경찰은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민을 연행했다. 몇 개월 지난 후, 이번에는 광장에서 ‘서로 미소를 보이며 걷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역시 경찰은 웃으며 걷는 시민을 연행했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인터넷을 통해서 벨로루시는 물론이고 전 세계 시민의 공분을 샀지만 여전히 그 나라의 대통령은 독재자 루카센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트위터를 비롯한 인터넷 공간에서 대통령이 동물 취급을 받으며 조롱을 당한 지 3년이 넘었지만, 그의 권위주의적인 통치 행태에 변화가 있었던가?

이것이 바로 불편한 진실이다. 혹시 우리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낄낄대다가 대통령을 모욕하는 글에 ‘추천’ 댓글을 달고, 그 글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 것만으로 ‘행동주의자’가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착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트위터 지식인’의 몇 줄짜리 논평에 환호하면서!

안타깝게도 세상은 150자짜리 논평 한 줄, 댓글 하나로 변하지 않는다. 클릭 한 번으로 인권을 지킬 수 없다. 인터넷 공간에서 아무리 “끌리고, 쏠리고, 들끓어” 보았자 컴퓨터만 끄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어디서 바뀌는가? 예전에 그랬듯이 세상은 피와 살이 튀는 광장에서 바뀐다.

1987년 6월이 그랬고, 최근의 재스민 혁명이 그랬다. 피와 살이 튀는 광장은 외면한 채 인터넷 공간에서 트위터와 같은 사회 연결망 서비스에 대통령 욕이나 해대는 모습이야말로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이 바라는 모습이다.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만 한 번 더 확인시켜 주는 꼴이랄까?
덧붙임

강양구 님은 프레시안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