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최저임금 올린다고 노동자 권리를 깎겠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최저임금 1만 원은 노동자의 권리 선언

최저임금의 산입범위가 조정되었다.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서 정치권, 노동계, 재계, 언론 모두 어렵고 복잡한 말들을 쏟아낸다. 동시에 진짜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는다. 개정의 내용은 상여금 25%, 복리후생비 7% 초과분은 최저임금에 포함하겠다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범위는 점차 낮아져 2024년이면 모든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으로 산입된다. 뭔가 나빠진 것 같은데 정작 누구에게 무엇이 나빠지는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면서 연 소득 2500만 원 미만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하려면 불가피했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이들은 일부 손해가 있어도 어차피 정부가 최저임금 1만 원까지 달성하겠다는데 이참에 임금체계 개편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도 한다. 이들의 말이 정말 사실일까?

최저임금법 개정은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다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다. 올해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 기본급 157만 원과 식비 10만 원, 교통비 3만 원, 기숙사비 17만 원을 포함해 복리후생비 30만 원을 받는 노동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월 187만 원을 받는 이 노동자에게 내년 최저임금이 월 20만 원 오른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 기존 최저임금법이라면 기본급이 오르기 때문에 온전히 20만 원을 올린 207만 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바뀐 법을 따르면, 복리후생비 17만 6000원은 최저임금에 포함된다. 따라서 이 노동자는 기본급 159만4000원, 복리후생비 30만 원을 더해 월 189만 4000원을 받게 된다. 실질적인 인상 효과가 2만 4000원에 그치는 것이다. 그다음 해에 최저임금 1만 원, 월 209만 원이 실현돼도 마찬가지다. 복리후생비 중 19만 5000원은 임금인상 효과를 상쇄한다. 이렇게 2024년이면 이 노동자의 복리후생비 30만 원이 전부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된다.

기대하는 만큼 오르지 않는 게 무슨 임금을 깎는 거냐고, 어차피 최저임금 1만 원 될 때까지만 조금 참자는 반응은 저임금 노동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이번 법 개정으로 고용노동부에서 추정하는 임금 인상 효과가 상쇄되는 노동자의 수는 21만 명이다. 해가 지날수록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산입되는 노동자의 비중이 많이 지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노동자의 임금 인상 효과가 상쇄된다. 연 소득 2500만 원이 안 되는 노동자의 임금에는 영향이 없다는 환노위의 말은 거꾸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연 2500만 원으로 동결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더 많은 노동자의 삶을 나아지게 하려고 존재하는 최저임금법의 취지가 무색하다. 이번 법 개정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삶이 사실상 동결된 것이다.

꼼수의 합법화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정이 미치는 문제는 임금 수준만이 아니다. 최저임금법 개정에 앞장선 홍영표 환노위원장도 말하듯 "한국의 임금체계는 기본급은 적고 상여금·성과금 등 기타 후생복지수당이 많은 구조다." 중요하고 적절한 지적이다. 임금은 직관적이고 단순해야 한다. 내가 일한 만큼 기본급을 받고 나머지 상여금이니 수당이니 하는 것들은 부수적인 것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을 스스로 확인하고 일한 만큼 임금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현재 임금의 항목들이 복잡하게 나누어진 이유는 '통상임금'이라는 규정 때문이다. 통상임금은 거칠게 이야기하면 기본급과 기본급처럼 주는 수당, 상여금, 복리후생비 등을 합친 것을 말한다. 사실상 기본급에 포함되어야 하지만 상여금이나 기타 수당으로 지급하는 임금이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통상임금이 퇴직금 산정이나 육아 휴직 시 임금, 잔업·특근 등 법정수당 가산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회사들은 이 통상임금을 줄이기 위한 꼼수를 만들어왔다. 기본급의 비중을 낮추고 수당과 상여금으로 임금을 쪼개서 통상임금에는 포함되지 않는 항목을 늘린 것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노동자는 자신의 임금명세서를 받아도 노무사, 변호사에게 가서 내가 임금을 제대로 받았는지 물어봐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동시에 회사가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은 줄어든다. 이런 꼼수는 특히 대기업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관행처럼 많은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기준이 되어있다.

그런데 이번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정은 그 꼼수가 계속되도록 길을 터주었다.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기본급에 포함하지 않고, 복잡하게 쪼개진 상태로 두어도 문제가 없도록 최저임금 계산법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다.

국회는 기회를 저버렸다

어차피 최저임금 인상하면 똑같은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복잡한 임금 항목들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떼이는 게 저임금 노동자의 월급이고, 심지어 알아도 떼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보너스처럼 인식되는 10만 원, 20만 원짜리 식비, 상여금 가지고 다투다가 사장한테 찍힐 바에야 침묵하는 것이 노동자에게는 경제적이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일은 기본급을 늘리고 임금 항목을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기존 최저임금법대로라면 임금이 기본급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었다. 기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따르면 저임금 노동자의 기본급은 최소한 최저임금 수준에는 맞춰진다. 즉,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는 시기에는 상여금, 수당 중심의 임금체계를 가진 회사들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 회사에서는 손댈 수 없는 기본급이 올라가니 복잡하게 임금을 쪼개가며 노동자의 월급을 깎을 동기가 없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법이 바뀌면서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도 최저임금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기본급을 굳이 올릴 필요가 없어졌다. 사장은 두 달에 한 번, 세 달에 한 번 주던 상여금을 매월 지급하는 방식으로 쪼개기만 하면 상여금은 알아서 최저임금에 포함된다. 이번 법 개정은 국회의 말처럼 상여금을 기본급화해서 임금 체계가 단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임금 항목을 단순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깎은 것은 임금만이 아니다

문제는 더 있다. 상여금을 최저임금으로 산입시키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회사마다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취업규칙'이 있는데, 일종의 사규다. 상여금도 이 취업규칙에 따라 지급한다. 띄엄띄엄 주던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산입시키기 위해 매달 한 번 주는 방식으로 변경하려면 취업규칙을 바꿔야 한다. 이때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바꾸려면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변경사항을 볼 수 있게 고지하고, 사장이 없는 자리에서 노동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국회가 상여금을 쪼갤 때는 노동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특례조항을 만든 것이다.

사실 취업규칙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작성한다. 그래서 노동자에게 불리한 규정도 많고,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어서 단체협상을 맺을 수 없는 노동자에게는 회사가 약속한 내용이 담긴 문서는 오직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뿐이다. 노동조건이 나아지긴 어려워도, 나빠지는 것은 막고 싶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권리가 취업규칙 변경과정에 찬성이나 반대를 말할 수 있는 권리다.

이렇게 몇 안 되는 권리조차 빼앗겠다는 시도는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개혁'에도 있었다. '쉬운 해고'와 더불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완화하는 정부 지침을 내린 것이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반발했다. 박근혜가 내려오고 문재인 정부, 여당, 야당을 막론하고 국회도 적폐청산을 외쳐왔다. 그 연장선에서 2017년 9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 완화를 지시한 지침은 폐기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최저임금법을 고치면서 국회가 또다시 노동자의 권리를 뭉갠 것이다.

알맹이 없는 최저임금 1만 원

최저임금 1만 원은 노동자의 권리 선언이었다. 사장이 노동자에게 돈을 줄 수 있냐, 없냐의 문제로 최저임금 논의가 갇혀 있을 때 '내 임금 시간당 1만 원, 한 달에 209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외친 것이다. 최저임금 1만 원은 임금이 액수이면서 동시에 내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요구이고, 또 삶을 보장하라는 요구임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에 국회는 최저임금 1만 원에 담긴 의미를 삭제했다. 액수만 도달하면 노동자의 권리는 중요하지 않다는 그들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최저임금 1만 원 달성하겠다며 국회의 이런 야합에 침묵하는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와 정부는 지금이라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최저임금 1만 원 올리겠다고 노동자의 권리를 깎을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앙상한 최저임금 1만 원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대로 된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위해 지금이라도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