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방탄'도 면제시키자는 생각, 처음부터 틀렸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병역제도, 질문을 바꾸자

아시안게임이 끝나자 경기나 선수에 대한 이야기보다 '병역'에 대한 논의가 분주하다. 축구대표팀과 야구대표팀의 금메달은 '병역특례'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이유를 보여주는 소재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가 실력을 드높일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면서도 그런 기회를 노리거나 요행히 얻어 군복무 의무에서 면제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특기가 군복무에 대한 해명을 하고 나서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상황은 참으로 불행하다.

예술‧체육계 특기자에 대한 병역특례는 받으면 좋지만 받아도 불편한 것이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와중에 방탄소년단이 언급되기 시작하자 팬들은 난감해했다. 방탄소년단이 마치 병역을 기피하는 것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병역특례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과 확대하자는 주장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만으로 오랜 시간 반복되어온 논란이 해소될 것 같지 않다.

한국의 병역제도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9조 제1항이다. 제헌국회에서는 '병역의 의무'도 명기하자는 안이 제출되었으나 부결되었다. 이듬해 징병제를 기본으로 하는 병역법이 제정되었지만 소집절차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전쟁을 맞게 되었다. 1948년 5만여 명 규모였던 국군은 휴전이 성립된 1953년 70만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병역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어느새 국방의 의무는 군복무 의무와 다르지 않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군대를 다녀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징병제를 운용하는 국가는 언제나 '수급 불균형'의 문제에 부딪친다. 인구에 비해 병력 수요가 적으면 복무 기간을 단축하거나 대체복무를 도입하여 해결한다. 한국에서 군복무가 아닌 형태의 통칭 '대체복무'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박정희 정부에서다. 1969년 방위병 제도가 신설됐다. 현역 판정을 받고도 입대하지 못한 사람들이 계속 쌓이자 방위병으로 소집한 것이다. 그러나 향토방위 임무를 수행하는 방위병은 거주지에서 출퇴근하고 복무기간도 현역복무자보다 현저히 짧아,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방위병 제도에 이어 1973년 병역특례제도가 신설되었다. 병역특례제도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기 위한 제도이기보다, 누구도 병역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제도에 가까웠다. 1973년 병역특례법이 제정될 때, '병역법 위반 등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된 사실로도 맥락을 짚을 수 있다. 병역특례법은 제정 이래 구체적 요건과 대상이 계속 변하고, 병역법과 통합 및 분리를 반복했다. 국가산업을 육성하겠다며 '특례보충역'(산업기능요원)을 만들었고 국민보건 향상을 위해 '공중보건의사' 제도가 도입되었다. 예술‧체육요원 제도 역시 73년 신설, 81년 시행, 89년 폐지, 94년 공익근무요원의 한 유형으로 추가되고 그 대상이 계속 바뀌는 등 변화를 겪었다. 이렇게 다양한 대체복무제도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끊이지 않는 특혜 논란에 따른 비난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을 향해왔다.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국가는 필요에 따라 사람을 판정했다. '보충역'은 모두의 부러움을 사지만 늘 특혜 의혹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현역과 보충역 비율을 조정하는 것은 국가다. 군 복무 기간이 30개월이었던 1986년에는 현역 판정율이 51%였고, 21개월인 2013년에는 91%였다. 병역 대상자 중 군복무를 하는 사람의 비율인 군 복무율은 1990년대까지 30~40% 수준이었다. 군 복무율이 계속 증가해 70% 이상의 수준으로 유지되지만 대체복무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한국의 '대체복무' 제도는 세계적으로 드문 모습이다. 징병제를 운용하더라도 군대에 적합한 사람을 골라내는 것을 우선시하는 국가는 징집되지 않은 사람에게 별도의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대체복무 제도를 운용한다면 대체복무의 목적에 충실하게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신청했을 때 인정율도 높다. 한국의 대체복무 제도는 병역을 기피하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에 더욱 충실하다. 한국에서 '대체복무'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군 복무가 너무 힘들어서 누구나 피하고 싶어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대체복무제도가 대체복무자들을 위한 제도라고 보기도 어렵다. 예술‧체육요원 제도가 '국위 선양'을 이유로 도입된 것처럼 산업기능요원 제도는 '산업 발전'을 위해 도입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기존 대체복무를 감축하고 폐지하는 계획을 수립했을 때에도 가장 강한 반발에 부딪친 것은 산업기능요원 폐지 계획이었다. 산업기능요원은 신분상 노동조합을 구성하거나 가입할 수 없고 해고되면 다시 현역병으로 입영해야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일을 시킬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할 좋은 경로다. 1986년 방위산업체인 대우정밀에 입사했던 노동자 조수원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다가 1991년 특례 기간 6개월을 남기고 해고된다. 1995년 병역특례 해고자 10명과 함께 38일간의 단식 농성까지 벌였으나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가는 사람의 권리보다 기업의 필요를 앞세웠다.

산업기능요원 제도는 국가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사람을 꿔주는 제도라면, 예술‧체육요원 제도는 누군가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을 국가의 것으로 가져가는 제도다. 사회복지 인력의 확충을 기대했던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사람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만드는 제도가 되었다. 대체복무를 수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제도를 축소 시행하거나 폐지하자는 의견이 58%, 확대하거나 현행 유지하자는 의견이 33%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역복무와 대체복무 사이의 경쟁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국가가 젊은 남성을 마음대로 쓸 권한만 키워줄 뿐이다.

국민을 서열화하는 병역 의무

대한민국 국적의, 18세가 되는 남성은 모두 '제1국민역'으로 편입된다. 징병검사를 마치고 군 복무 적합자와 부적합자(불합격자)가 구분된다. 불합격자 중 5급은 '제2국민역'(근로예비역)이 된다. 제1국민, 제2국민 같은 말은, 그저 편의상 쓰는 용어로 보기에는 너무 투명하게 병역제도의 본질을 드러낸다. 병역법은 국방의 '의무'를 부과하는 법이기도 하지만 '성스러운 국민'이 될 '권리'를 부여하는 법이기도 하다. 여성은 보호 받는 수혜자가 되고, 군대 부적응자는 사회적 낙오자가 된다. 현역복무자 외에는 '무임승차자'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제도든 형평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형평성인지 질문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형평인지 알기 어렵다. 아시안게임 이후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운동선수나 예술 특기자뿐만 아니라 공부하고 일하는 청년에게도 20대의 시간이 중요하니 예술‧체육요원제도는 형평에 맞지 않다, '국위 선양'이 기준이라면 특정 대회나 특정 순위로 특례를 제한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 무엇이 동등할 때 우리는 형평에 맞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적어도 국가로부터 동등하게 부름 받을 권리를 위해 형평성을 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군복무를 기준으로 국민을 서열화하는 국가에서, 병역제도 전체를 문제 삼지 않고서는 형평을 이룰 수 없다.

국가의 안보를 위해 군대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효과적으로 병역제도를 운영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징병제가 모병제보다 효과적인 것도 아닌데 한국의 병역제도 논의는 어떻게 최대한 징집할 것인지에만 골몰한다. 군대 내 열악한 처우와 인권침해의 심각성은 외면한 채 병역 의무의 신성불가침성만 강조한다. '억울하면 지는 것'이라는 말이 한때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한국사회에서 현역 복무하고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가 기피할수록 기피자의 색출과 단죄가 쟁점이 된다. 대체복무제도조차도 어떻게든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하는 데에 더 큰 목적이 있으니 병역 거부자에게 지뢰제거작업을 시키자는 섬뜩한 주장도 나온다. 이제 질문을 바꿀 때가 되었다.

병역제도, 질문을 바꾸자

2016년 6월 인천지법의 병역거부 무죄 판결을 되새길 만하다. 당시 재판부는 "군인들이 복무 기간 매우 적극적인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여성·장애인·노인·청소년, 군 면제자, 군 전역자 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비폭력 평화주의에 바탕을 둔 반전 활동도 국가 안보에 기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게 했다. 군복무는 우리가 구성하는 정치공동체에서 평화롭게 살 권리, 재난과 빈곤과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군 복무율이 높을수록 병역제도의 형평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모두가 감수해야 하는 부담도 그만큼 높아진다. 똑같이 가야 공평하다? 대상자를 잘 선정하면 공정하다? 모두가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군대라면 가고 싶지 않으니 가고 싶게 만들거나 가지 않아도 되게 만들라고 말하자. 종전선언을 기대하고 평화체제를 만들자는 전망을 말하는 요즘 더욱 어울릴 요구다. 병역제도에 대한 논의의 출발선은 국가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삶을 계획하면서 '언제 어떻게 군대 갈까'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국가 말고, 모두의 삶을 의미 있게 여길 줄 아는 국가를 만들기 위한 토론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