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노동자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인권으로 읽는 세상]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지워버린 권리

7월 1일부터 '1주'가 '7일'이 됐다. 상시 3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부터 차차 1주가 7일이 된다. 2년 후부터는 '빨간 날'이 쉬는 날이 된다. 5인 이상 사업장은 4년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법정 공휴일이 유급 휴일이 된다. 올해 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이야기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혼란 불가피"를 우려하고 "충격 최소화"를 주문하는 말들이 부산하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말이 당연하게 사용되는 분위기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법으로 노동시간 기준을 주 40시간으로 정한 지 15년이 지났다. 세상이 이렇게 거꾸로 가도 되는 것인가?

노동시간 단축 논의의 역사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때부터 1일 노동시간 기준은 8시간이었다.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1주를 놓고 이루어져왔다. 주 48시간이던 기준은 87년 항쟁의 기운을 업은 1989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짧아졌다. 주 44시간, '토요일은 일찍 퇴근하는' 풍경이 조금씩 펼쳐지기 시작했다. IMF 이후 일자리를 나누자며 시작된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2003년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정한 법 개정을 이루어냈다. 차츰 '토요일은 출근하지 않는 날'이 되어갔다. 물론 법이 정한 기준이 그랬다는 얘기다.

일하는 사람들은 늘 기준보다 더 일했다.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면 그 한도는 1주 12시간이라는 규정을 사용자들은 다르게 이해했다. 1주 12시간까지 일을 더 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그래서 주 5일 동안 40+12=52시간 일을 시키고, 휴일인 이틀 동안 하루 8시간씩 16시간까지 일을 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이번 개정에서 1주는 "휴일을 포함한 7일"이라는 규정을 두게 된 내력이다.

주 40시간 노동이 점진적으로 법정 기준이 되어가는 동안 현실에서는 주68시간 노동이 정착되고 있었다. 15년 전 정한 기준을 무너뜨려온 것은 정부였다. 1주 동안 68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는 행정해석으로 사용자들에게 자유를 줬다. 이제 와 노동시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에 혼란이 있다면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법정 공휴일도 원래 유급휴일이었다. 97년 근로기준법을 다시 만들면서 국회가 지워버렸다.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고 잃었던 권리를 되돌려놓는 일에 국회는 각종 유예 조항들을 달아놓았다. 노동시간 단축이 두려운 건 정부와 국회가 아닌지 의아할 정도다.

누구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인가

모두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인지 헷갈린다. 이번 법 개정의 모든 유예가 끝나고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는 유보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유난히 체력이 좋거나 일 중독이기라도 할 리는 없다. 장시간 노동이 건강을 해치고 과로사 위험을 높이며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각종 통계들을 굳이 꺼내올 필요도 없다. 일하는 사람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자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라면 이와 같은 예외는 매우 해롭다. 맘대로 일 시켜도 된다는 허가를 내준 셈이 되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의 여지를 남겨둔 것만 문제는 아니다. 시간은 돈이다. 그래서 사용자는 노동자의 시간을 더 많이 써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한다. 그러나 또한 시간이 돈이라 일을 시킨 만큼 돈을 줘야 한다. 그래서 사용자는 시간을 아껴 돈도 아끼려고 한다. 사용자가 시간을 아끼는 방법은, 일을 시키고 싶을 때 시키고 시킬 일이 없을 때 쉬게 하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공단에는 강제 휴가도 흔하다. 휴게시간이나 휴가는 모두 노동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노동시간에 '탄력'을 둘수록 노동자에게는 불리하다.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만 줄인다고 권리가 저절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는 권리도 짧다. 법을 '응용'해 사용자는 '주당 14시간 40분 파트타임' 같은 구인공고를 낸다. 노동자는 유급휴일, 4대 보험 등의 권리를 빼앗긴다. 사용자로서는 "일 준비해야 하니까 15분 일찍 나오세요." 하면 그만이다. 그럴 의무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노동자는 일찍 출근한다. 아무도 권리를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에 대한 권리

시간이 돈인 현실에서 노동자는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더 내주기도 한다.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으로 생활을 지탱하려면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 공단에서는 잔업 특근이 사라질까 오히려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다. 열악한 조건이지만 그나마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시간과 돈과 일자리 사이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남들 다 쉴 때 쉬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도 있다. 유급휴일이 어느 날인지도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좀 덜 벌어도 일자리를 구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면, 시간제로 일하다가 전일제로 복귀할 권리가 있다면 노동자는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일을 더 시킬 때, 돈을 덜 줄 때, 함부로 자를 때,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싸울 수 있다면 시간은 그만큼 노동자의 것이 된다.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아니라 시간에 대한 지배력이 자본의 힘이다. 노동시간 단축만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노동시간 총량이 줄어들더라도 유연성이 높아진다면 시간은 다시 사용자의 것이 된다. 일자리 창출, 노동생산성 향상은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지 목표가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의 목표는 노동자에게 시간에 대한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어야 한다.

시간에 대한 권리는 홀로 설 수 없다. 일자리, 공정하고 유리한 임금,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 휴식과 여가- 이 모든 것이 노동자의 권리다. 노동자의 권리 모두를 목표로 삼을 때에만 하나의 권리도 증진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회와 정부가 보이는 모습은 오히려 거꾸로다. 임금이 갑자기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며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고, 임금이 너무 떨어질 수 있으니 노동시간은 천천히 줄이자고 한다. 국회와 정부는 권리를 거래시키며 기준을 후퇴시키고 있다. 그 결과는 모든 권리의 박탈일 수밖에 없다.

시간은 전선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발 맞춰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기업의 시도들이 소개되고 있다. 퇴근 시간이 되면 컴퓨터를 일제히 끄기로 했다거나,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다거나, 노동자가 더 자유롭게 쉴 수 있도록 시간 단위 연차를 도입한다는 등의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언뜻 보면 좋은 취지다.

그런데 막상 일하는 사람들은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못 마친 일은 집에 가서 해야 할지, 집에서 일하면 수당은 받을 수 있는지, 제때 일을 못 마쳐 무능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무능하지 않기 위해 무료노동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닌지, 시간 단위 연차가 연장근로수당 지급을 회피하기 위한 사용자의 무기가 되는 것은 아닐지......

근로계약은 시간을 파는 계약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권리까지 양도한 것은 아니다. 일할 시간에 일하고 쉴 시간에 쉴 권리.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약속한 대로. 일하고 쉬기에 적당한 임금을 받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조건이 아니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조건에서 협상과 협의를 통해. 노동시간이 인권이라는 말의 뜻이다. 시간은 전선이다. 권리를 위한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