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후원인 인터뷰

낮은 목소리를 들려주길

신경혜 님을 만났어요

함께 사무실을 쓰는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 루트가 얼마 전 구례 5일장에 놀러갔다 우연히 만난 분이 사랑방의 후원인 신경혜 님이었대요. 재미난 인연에 어떤 분일까 궁금해져 연락을 드렸습니다. 18개월 된 재이의 엄마 신경혜 님, 마침 전화를 드렸을 때가 아기가 낮잠을 자고 있던 중이었대요. 한숨 돌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셔야 할 때 전화기를 붙들고 있게 해드려 죄송했습니다. ^-^;; 지금 살고 계신 구례의 봄이 참 예쁘다는데, 언제 놀러오면 좋겠다고 건네주신 이야기가 맴돌기도 하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포근한 목소리에 벌써부터 봄이 기다려지네요. 

◇ 안녕하세요. 사랑방과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신 건지 궁금해요.

 

딱 언제라고 기억이 나진 않는데요, 박래군 활동가에 대한 글을 봤던 게 어렴풋이 떠오르네요. 푸른영상에서 만든 영화를 보면서, 김규항 씨의 글을 접하며, 그리고 인권영화제에 가면서 이런저런 시간들 속에서 인권운동사랑방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교대를 나왔는데, 학교 다닐 때 인권 관련 교재를 만드는 과제를 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을 때도 사랑방 소식들을 봤던 것 같고요. 교사되고 나서도 대안교육 관련 연수 받을 때 수업을 해준 분 중에 사랑방 활동가가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남아있어요. 어떤 계기가 딱 있었다기 보다는 이렇게 저렇게 사랑방과 연결됐던 것 같아요.

 

◇ 보니까 CMS로 2009년 1월부터 후원을 해주셨더라고요. 어느덧 9년인데요,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랑방은 어떤지 궁금해요.

 

사랑방을 인권에 대해 목소리 내기 시작한 단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데보다 마음이 더 갔던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다니 놀랍네요. ㅎ 아이를 낳고 2년째 육아휴직 중이거든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중이라 재정상황이 좋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후원하던 것을 많이 정리했는데, 사랑방은 남겨두고 싶더라고요. 제가 나서서 뭘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에 고마움이 있거든요. 거대 이슈만 쫓는 게 아니라 거기서 좀 벗어난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러나 꼭 필요한 곳에서 중요한 이슈를 만들어내고 알리는 일을 사랑방 활동가 분들이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 주소가 강원도로 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순천에서 사신다고 들었어요. 근황을 얘기해주신다면?

 

교사로 지내며 원주에서 살다가 발령이 인제로 나서 강원도에서 오랫동안 살았는데요, 아이가 생기고 육아 휴직을 하면서 한번 다른 지역에서도 살아보자 해서 이곳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네요. 돈보다 시간에 의미를 두면서 남편과 함께 육아 생활을 하고 있어요. 구례 5일장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팔면서 지내고 있고요. 구례 장에 놀러오시면 커피 한잔 드시러 오세요. ^-^

◇ 사랑방에서 해온 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아기가 생긴 후부터 초야에 묻혀 살고 있어서 그런지 대통령도 바뀌고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는데 모든 이슈와 멀어져 지내고 있어요. 메일함을 들어가 본지도 아득한데요, 사랑방은 저에게 쉽게 접하지 못하는 삶들을 알게 해줬던 듯해요. 촉각을 세우고 늘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뭔가 전해들을 때마다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랑방에서 소식을 접하고 용산참사 현장,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 갔던 기억이 있네요. 아. 20주년 ‘회동’에도 갔었어요. 비 오던 날 대한문 앞에서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수건 받아왔거든요. 나중에 하나 더 받아서였는지 집에 회동 수건이 2개가 있네요. ㅎ

 

◇ 요즘 관심사나 고민거리가 있다면?

 

딸을 낳고 키우면서 제가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주변에서 아이에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귀엽다, 이쁘다, 공주님 주로 이런 얘기들이고, 물려받는 옷들도 다 분홍색이고... 이런 것들이 내면화 시키겠구나 싶어요. 초음파 검사하며 성별 확인할 때도 ‘없다’라는 표현을 하더라고요. 또래 남자아이들하고 같이 있을 때 우리 아이한테 하는 말이랑 남자아이한테 하는 말이 다르거든요. 얼마 전엔 한 여자아이가 ‘나는 왜 고추가 없어?’ 그런 말 하는 것을 들었는데, 나쁘고 어쩌고를 떠나서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생활 속에서 많은 부분 그런 게 느껴지고 우리 아이도 많은 편견 속에서 살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여성이지만, 딸이 생기면서 더 민감하게 듣고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요. 일상에서, 많은 관계 속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거라서 문화를 바꿔내는 게 중요한데, 그런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로서 가져가야 할 가치관, 바로세워야 하는 것들을 고민하면서 다시 복귀하면 무덤덤하지 않게, 섬세하게 살아야겠다 싶어요.

 

◇ 아이를 낳기 전에도 여성으로서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셨던 게 있는지?

 

강남역 사건이 있기 전부터 저도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공중화장실 갈 때 친구에게 앞에 있어달라 하고, 혼자 사는 티가 나지 않게 남자 신발을 현관에 놓기도 하고, 뭐 시켜먹을 때도 TV를 일부러 켜놓기도 하고. 밤길에 걷다가 피터지게 맞았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럴 때 여자 혼자 밤에 다니지 말아야지-로 이야기 되잖아요. 문제는 그게 아닌데 잘못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게 되잖아요. 여성은 여전히 약자구나 생각이 들면서 정희진 씨 글에서 봤던 페미사이드라는 말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안감을 내 아이에게 주고 싶지는 않은데, 줄 수밖에 없는 사회잖아요. 그런 사회에서 아이가 어떻게 살아가도록 길러야 할까 모르겠네요. 제가 먼저 아이의 행동반경을 잘라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어요. 아이가 자기 자신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는데 어렵네요.

 

◇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저런 걱정도 있을 거 같은데?

 

육아 수당 2년차는 안 나오거든요. 저희 경우는 경제적으로 스스로 내려놓은 것도 있지만, 정부 지원금이 있어도 왜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지 알겠더라고요. 아이 낳으라고 하면서 지원은 별로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복귀 전까지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려고 하는데, 정부에서 이런저런 지원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귀촌의 즐거움을 이야기해준다면?

 

여기서 산지 이제 1년 되었거든요. 인제에 살 때만 해도 읍내였는데, 여긴 근처에 구멍가게 하나 없어요. 뭐 하나 사려면 꽤 걸어 나가야 하고, 운전면허증도 없어서 저 혼자 어디 나가려면 한참 걸어서 버스를 두 번 타고 가야 해요. 근데 불편함이 불편함으로 느껴지지 않고 우리가 선택한 즐거움이라 생각하거든요. 저에게 도시는 ‘소비’로 딱 등식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거기서 확 떨어져서 사니까 그게 자유로움을 주더라고요. 도시와 시골에서의 삶을 이분법적으로 비교하긴 그렇지만, 소비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훨씬 적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자유로운 것 같아요. 가끔 고립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요. ㅎ 저희 집이 동네에서 조금 떨어져있어서 주로 구례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는데요, 활기가 있어요. 봄에는 3월부터 첫째주, 셋째주 토요일마다 서시천에서 콩장이라는 이름의 프리마켓이 열리거든요. 소소한 재미들이 있어요. 사람들도 정이 많아 만나면 반갑고요. 언제 놀러오시면 참 좋겠어요. ^0^

◇ 마지막으로 인권운동사랑방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요즘 주로 어떤 활동들을 하시는지 제가 잘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지금 이대로라고 해야 할까요, 큰 이슈를 생산하는 것보다 낮은 곳에 있는 분들의 목소리에 귀 기 기울이고 목소리를 전해주는 곳, 저에게 인권운동사랑방은 그렇게 기억되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낮은 목소리를 들려주길 바라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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