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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다들 많이 아프다

오랜만에 친구와 밥을 먹었습니다. 소문난 집이라는 식당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커다란 소방차들이 지나갔습니다. 지나갔다기보단, 근처에 왔네요. 많이들 그러하듯, 나도 무슨 일인가 싶어 소방차를 쫓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살펴보았습니다. 코끝에 매캐한 냄새가 살짝 스쳤지만 불이 난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고, 연기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돌아와 맛있게 밥을 먹었습니다. 친구와 '화재'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요.

 

다음날, 인터넷에 올라온 뉴스를 보았습니다. 밥을 먹은 동네에서의 화재, 모자의 사망, 빚, 인위적 착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저런 단어들의 나열만으로도 대충이나마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게 더 서글픈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맛난 밥을 먹을 때, 누군가는 바로 그 옆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네요. 나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이 누리지 못한 것은 무엇일지. 이 세상에 어떤 넘지 못할 선이 있었기에, 결국 그들은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의 선을 넘어야만 했을까요.

 

그 무언가를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찾아낼 수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단지 돈,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마음 아플 정도로 간단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주거'에서, '노동'에서, '교육'에서, 어떤 차별이 주어지고 사람의 어떤 존엄함을 빼앗겼는지 알지 못하면 거꾸로, '돈 때문에'라고 하는 강력한 명제를 넘어서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동병상련이라고,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더욱 알기 어렵습니다만, 기어이 그런 아픔을 찾아서 보려고 하고, 또 그것을 개별적인 불쌍함이 아닌 "사람의 권리"로 읽어내려는 마음이 소위 인권감수성이 아닐런지요. 이 사회, 이 공동체 안에서, 인권감수성이 단단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사람의 권리"를 만들고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인권운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인권운동이 좀 더 힘이 있었다면, 그 화재로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되었을까요. 정말 쓸모없는 가정이긴 합니다만, 지금 한국 사회에는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고, 돈이 아프고, 관계가 아프고... 그 많은 아픈 이들에게 인권, 인권운동이 힘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