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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선거제도가 시민 정치 참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선거제도 개혁 논의, 핵심은 시민 권리 보장이어야

매번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함께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투표율이 몇 퍼센트라느니, 특정 세대의 결집이 어쨌다느니 하는 뉴스들이다. 마지막에는 입을 모아 투표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규탄하는 뉴스로 귀결된다. 소중한 한 표를 던지는 일이 중요한 만큼 투표에 불참하는 일은 문제로 이야기된다.
 
그런데 정말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일까?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 '소중한 한 표'를 던지고 나면 한동안 멀어지는 '정치'를 따라 대중의 관심도 함께 멀어지기 마련이다. "당신의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정말 세상이 바뀌는지 알 길도 없다. 정치에 참여하는 장으로써의 선거가 너무 초라하다. 
 
선거제도가 정치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 
 
선거일. 투표용지 속에 꼭 내 마음 같은 후보는 없고, 설령 내 뜻을 대변해줄 수 있는 후보가 있더라도 당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 보일 때 유권자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본인을 대표할 수 있는 후보 대신 그나마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더라도 본인의 뜻을 가장 잘 대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거나, 아무도 찍지 않은 투표지로 의사를 표현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냥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과반수가 되지 않더라도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한 명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 단순다수대표제'이다. 현 제도 상에서는 아무리 많은 표를 받더라도 1등이 아니면 당선되지 않는다. 낙선한 후보에게 모인 표는 흔히 사표(죽은 표)라고 불린다. 살아남은 표와 죽은 표를 나누는 현행 선거제도가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
 
표 계산에 급급한 선거제도 개혁 논의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해온 목소리가 있다. 지난 10월 31일, 정치개혁공동행동과 7개 정당(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민주평화당, 민중당, 바른미래당, 우리미래)이 함께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정당-시민사회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날 참여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민심을 대변하지 못하는 선거, 거대한 두 개의 당이 너무 많은 의석을 차지하게 되는 선거제도를 비판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투표 득표율을 기준으로 전체 의석을 나누는 제도이다. 현재 의회 구성이 대부분 지역구 의원으로 이뤄진 상황에서, 정당투표에서 아무리 많은 표를 받더라도 의석 배분율에는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전체 의회 구성에서 비례 의석이 차지하는 비율을 올리고, 실제 득표율이 전체 의석 배분율과 연동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구상이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이 같은 제도 개선은 이후 선거에서 자당의 당선 및 의석 배분율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두 거대 정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 이유다. 이미 지난 여름에 구성되었어야 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4개월 늦어진 10월 말에야 구성되었고, 활동시한은 12월까지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선거제도는 시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이 아니라 집권 세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해왔다.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된 제6대 국회에서는 지역구 선거에서 정당의 득표비율을 비례의석 배정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당시 제1당은 지역구에서 아무리 적은 의석을 얻었더라도 최소 50%, 최대 3분의 2의 비례 의석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비례대표제는 변천을 겪었지만, 13대 국회까지도 집권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형태였다. 이번 선거제도 개혁 논의도 마찬가지다. 예상 득표율과 의석수를 바삐 계산하는 손이 다시 한 번,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 
 
'실질적이고 폭 넓은 정치 참여'를 위한 개혁 
 
선거제도 개혁은 정당끼리 의석을 나눠가지는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실질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와 각 정당이 할 일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을 때 득표율과 의석수가 어떻게 변할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어떻게 실질적인 정치 참여가 가능하도록 만들지 고민하는 일이 아닐까. 
 
실질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선거 과정 역시 변해야 한다. 현행 공직선거법 93조와 103조는 선거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의사표현을 금지한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 지지/반대뿐만 아니라 공약을 검토하는 토론회, 집담회, 심지어는 반상회도 특정한 사유 없이는 개최할 수 없다. 후보와 공약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이 이뤄져야 할 선거기간에 오히려 시민의 입은 틀어막히고 있다. 
 
또한 더욱 다양한 시민, 더욱 폭넓은 사람들의 정치 참여를 위한 변화도 필요하다. 청소년 참정권 요구는 단순히 선거 연령을 몇 살 낮추자는 논의가 아니라, 이 사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도전하는 과정이다. 발달장애인이 실제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투표용지에 후보의 사진과 공약을 표시하는 일, 고정된 주소지가 없는 홈리스도 투표할 수 있도록 부재자 투표제도를 적극 홍보하는 일 모두 정치 참여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다. 
 
가로막히고 유예되었던 시민 모두의 참정권은 선거제도만 바꾼다고 되찾을 수 없다. 핵심은 선거제도가 아니라 시민의 정치적 권리이다. 더 좋은 선거제도를 운영하면 정치적 권리가 보장되는 게 아니라, 정치적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일 때 어떤 선거제도든 잘 운영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단순히 선거제도만 바꾸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선거기간에만 반짝 등장하는 정치 참여가 아니라, 모든 시기에 전 사회에서 시민에게 열려 있는 정치 참여의 길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은 길을 만드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최근 구성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에서 대표성과 비례성 확대 및 선거연령 인하를 포함한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했다. 국회의장과 여야 5당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올해 연말까지 선거제도 개혁을 마무리한다는 결의를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기에 앞으로 논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고 한다. 
 
그러니 표 계산과 의석 배분율에 집중하는 지금 선거제도 개혁 논의의 지형을 바꿔야 한다. 참여를 가로막고 입을 틀어막아온 선거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실천하는 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실질적이고 폭 넓은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국회 안에서 시작되는 변화가 아니라 시민의 정치적 권리에서 시작되는 변화를 만들자. 앞으로 연말까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과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